“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요한 8,28)
사람들은 하느님의 아들을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분이 당신의 모습을 올바로 드러내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일단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게 앞에서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 쓰는 아이의 마음 속에는 이미 엄마의 소중함에 대한 개념 자체가 달아나고 없는 법입니다. 그러다가 엄마가 ‘그럼 나 간다 너 혼자 잘 해봐’라고 나서기라도 하는 날에는 더 놀라서 두 배로 울게 되지요.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구에 사로잡혀서 사람의 아들을 바라볼 겨를이 없습니다. 자신들이 저마다 추구하는 욕구를 향한 집착이 너무나도 강해서 십자가에 매달려 여전히 고통받는 사람의 아들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주의를 조금 더 환기시키기 위해서 현실에 대해서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10억짜리 사업을 하던 사람이 이익금 3억을 받을 것을 2억만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2억을 버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잃은 1억원이 너무나 아까워 죽을 지경입니다. 그런 이가 자신의 주변에서 100만원이 없어서 고통받는 이웃의 현실을 보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 손으로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릴 것입니다. 물론 그냥 들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박아 들어올리게 되겠지요. 그리고 그제서야 그 분을 보고는 예수님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표현해서는 이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병상에 누워있던 어머니를 찾아가 보지도 않고 돈이나 부쳐대던 아들이 결국 어머니를 여의고 나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어머니의 숨겨진 진실, 아들을 위한 끊임없는 희생과 기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는 후회감… 자신이 소홀히 대하던 아내, 다른 여인에게 눈이 팔려 외도의 시도를 수도 없이 하는데도 불구하고 묵묵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다가 결국 아내가 평소 지니고 있던 지병이 심해져서 말기위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나서 느끼는 아내의 빈자리와 그에 대한 한탄… 바로 이런 일들로 우리는 사람의 아들, 즉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힌 하느님의 외아들의 본래적 위치를 간접적으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신앙인들은 자신의 뜻, 즉 자신의 이기적인 욕구로 살지 않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뜻으로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그러나 그런 이들을 올바로 바라보기에ㅐ는 세상 사람들의 이기심과 탐욕이 너무나도 크기만 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