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에는 여러가지 기쁨이 존재합니다. 맛난 음식을 먹는 기쁨부터 시작해서 하느님을 마주하는 기쁨까지 다양한 종류와 ‘수준’이 존재하지요. 우리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자연스럽게 이런 기쁨들을 찾아갑니다.
가장 기초적이고 강렬한 것은 바로 우리 오감으로 체험되는 기쁨들입니다. 이를 쾌락이라고 부르지요. 어린 아이가 모빌을 보면서 신기해하는 것, 까꿍을 하는 엄마 얼굴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또 단 맛을 즐기게 되는 것, 부드러운 인형을 좋아하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 어린 시절의 강렬한 기쁨의 체험은 어른이 되어서도 이어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다음으로는 감정적인 기쁨과 이성적인 기쁨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무언가 따스한 체험이 있을 때에 아이는 기뻐합니다. 마치 강아지가 주인의 기분을 알아채는 것처럼 주변 사람들의 웃음에 자연스럽게 물들어가고 또 그와 반대로 주변 사람들의 어두운 감정에 영향을 받기도 하지요. 그리고 무언가를 새로이 배우는 기쁨을 느끼기도 합니다. 새로운 동식물들을 바라보면서 그것을 탐구해 나가면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지요.
이어 ’관계’의 기쁨입니다. 부모와 맺는 관계, 또 친구와 맺어가는 우정의 관계 안에서 기쁨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행동을 하기도 하지요. 적장 본인의 성취감보다는 다른 이들의 얼굴에 미소를 보기 위해서 무언가에 열중하는 아이도 존재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느님 안에서의 ‘기쁨’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관계의 기쁨 가운데 최고의 단계에 속하는 것으로 우리를 창조하신 분과의 관계 안에서 누리는 기쁨이지요. 그분의 조건 없는 사랑 속에서 체험하는 가장 내밀하면서도 가장 강렬한 기쁨입니다.
이러한 종류의 기쁨들은 우리의 인생 안에서 다양하게 드러납니다. 어느 한 기쁨이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골고루 드러나는 것이 보통입니다. 예를 들어 미사를 드리러 성당에 가서 성당의 조각물들에 마음을 빼앗길 수도 있고, 성당의 장엄함에 감정이 감동될 수도 있으며, 전에 몰랐던 것을 강론 중에 배우면서 기쁨을 느낄 수도 있고, 신자분들과 만나면서 기쁨을 느낄 수도 있지요. 물론 미사의 핵심은 하느님과의 관계이니 그 안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긴 할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기쁨들이 제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적지 않은 이들은 보다 드높은 기쁨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때로는 ‘인간사에서의 기쁨’에로 집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그런 경우들이 훗날 문제가 됩니다. 그들은 나름 세상 안에서 기쁨을 찾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기쁨을 상실하고 사는 것입니다. 값지고 돈 나가는 우리의 말단의 쾌락을 채우는 것을 위해서 때로는 고귀하고 드높은 하느님과의 관계의 기쁨을 상실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의 눈을 들어 높이십시오. 그리고 영원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바로 거기에 진정한 기쁨, 즉 영원 안에서 꺼지지 않는 빛의 기쁨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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