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신학적 연구 내용은 실로 어마어마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구절 하나 단어 하나로 논문을 써 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성경을 그런 모든 연구를 섭렵해야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면 아마 세상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성경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읽히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읽고 그 안에 든 것을 배우고 실천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읽어 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성경에 접근해 나가야 하는 것일까요?
이는 성경이 어떻게 쓰여졌는가를 올바로 아는데에서 시작합니다. 성경은 과학적 진리를 서술한 과학 참고 도서도 아니요, 역사적 사실을 나열한 역사책도 아니며 사람들을 그저 감동시키기 위한 문학책도 아닙니다. 그러한 모든 것들이 성경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그러한 방향에’만’ 빠져들기 시작하면 성경은 그릇되이 이해되기 십상입니다.
사실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성경은 성령의 영감을 통해 저술된 것이며 따라서 성령을 통해서 읽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는 역시 동시에 가장 어려운 말이기도 합니다. 성경을 성령을 통해서 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성령은 거룩한 영이고 하느님의 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이 우리 안에 활동하도록 하기 위해서 성경을 읽어야 하고 또 그렇게 활동하시는 성령을 통해서 성경에 다가설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끄는 영이고 하느님의 뜻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영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는 사람은 자신 안에 하느님을 향한 열정이 존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을 올바로 살아 나가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탐욕이 가득한 사람이 ‘청빈’이 주제인 책을 읽으려고 든다면 어떻게 될까요? 두 가지 중의 하나의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즉, 몇 장 읽다가 자신이 추구하는 것과 정반대되는 내용들에 가슴이 시려서 책을 덮어 버리던가 아니면 그 책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삼아 열심히 읽어 내어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탐욕을 내버리던가 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후자의 일은 잘 일어나지 않고 거의 전자의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선에 좀처럼 다가서지 못하고 오히려 선에서 멀어지는 일이 허다하게 일어나곤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성경을 좀처럼 손에 쥐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성경을 제대로 읽으려면 내 마음이 시리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맑은 마음으로, 뉘우치는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선과 진리와 사랑을 추구하는 마음으로 읽는 책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책을 읽을 때에 그 책은 우리에게 진정한 영양분을 주고 우리를 참된 변화로 이끌어가게 됩니다.
성경을 읽으려고 노력하십시오. 읽기 싫어질수록 더욱 열과 성을 다해서 읽으려고 노력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변화되기를 바란다는 지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선호도가 아니라 결심이며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