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면담이라는 것은 일단은 서로 맞대면을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인간이 의사를 전달하는 데에는 오직 ‘언어’만이 그 수단이 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상대의 표정과 따스한 환대 등등 여러가지 면으로 서로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인터넷이나 전화로 상담을 하는 경우에는 많은 다른 인격적 부분들이 결여되기 때문에 면담의 방향이 엉뚱한 곳으로 치달을 수 있게 됩니다.
사제의 여성과의 만남은 굉장히 신중해야 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피치 못한 경우가 아니라면 가능하다면 여성분들은 가장 적합한 ‘여성 지도자’를 찾아주는 것이 좋습니다. 덕망 있는 수녀님이나 본당의 신뢰할 만한 여성 평신도를 추천해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피치 못하는 경우라면 열린 공간을 확보하고 가능한 모든 추문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면담은 거의 한 번으로 끝나게 됩니다. 특히나 한국적인 현실 속에서는 ‘바쁨’이 일상화 된 지라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사실 예수님도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만나지는 않았습니다. 거의 한 두 번이 끝이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만남은 예수님을 마주한 이들에게 엄청난 영감과 색다른 방향성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고해소 이외의 환경에서 장기적인 면담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거의 모든 케이스는 한 번의 개인 면담으로 끝나는 것이 보통이고 장기적으로 한 사제에게 영적인 지도를 받기를 원하는 경우는 늘 이용할 수 있는 고해의 시간을 이용해야 합니다. 수도원이나 신학교, 또는 본당처럼 서로 같은 지역에 머무르지 않는 이상, 구역을 벗어난 곳에서 찾아온 내담자가 ‘장기면담’을 요청할 때에는 그가 사는 곳 주변에서 합당한 인물을 찾게 도와주는 것이 좋습니다.
영적 지도자인 사제는 스스로 ‘분별’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합당한 분별이 형성되지 않았을 때에는 고해소 외에 따로 다른 면담을 시도하는 것에 극도로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분별력이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고해소 밖을 벗어나 무언가를 시도한다는 것은 영적 면담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일종의 유혹에 시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유혹은 영적 지도자 자신에게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또는 내담자에게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젊은 보좌 신부님들에게 젊은 여성 내담자가 찾아올 때에는 언제나 사제 자신의 인간적 약점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본인은 괜찮다 할지라도 여성에게서도 모종의 변화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면담은 가능하면 짧아야 하고 그 밖의 다른 감정적 동요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영적 지도자를 ‘위협’하는 내담자는 극도로 경계해야 합니다. 흔히 ‘자살하려고 한다’, 또는 ‘자살하고 싶다’는 표현을 하면서 찾아오는 여성 내담자가 있습니다. 절대로 자살하지 않을 사람이니 자살할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하지 말고 연세 많으신 신부님에게 먼저 문의하거나 수녀님을 추천하거나 또는 심리 전문 상담자를 추천해 주는 것이 더 나은 방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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