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내면의 생각이 그를 지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리 외적 힘이 세더라도 내면에 누군가를 이기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면 실제로 그에게 져버리고 맙니다. 생의 고뇌가 아무리 극심해도 묵묵하게 이겨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주 작은 수난에도 힘들고 괴롭다고 투덜대는 사람도 있습니다.
평화를 누릴 사람은 누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느님'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외적으로 아무리 안전한 상황에 놓여 있어도 내면이 불안한 사람에게는 평화가 없습니다. 그들은 모기 한마리에 성가심을 느끼면서 평화를 깨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볼리비아에서 아무리 힘든 하루를 보내도 집에 들어와서 샤워를 하고 나면 개운함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무리 깨끗하고 안전한 상황에서도 새로운 불평거리를 찾아내는 사람을 마주하곤 했습니다.
우리가 평화로울 수 있는 이유는 하느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우리에게 '궁극의 평화'를 선물하십니다. 바로 죄와 영원한 죽음에서의 자유가 그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올바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잠시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다시 다가오는 삶의 도전 앞에서 마음이 무너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마태 10,11-13)
평화를 누릴 사람은 누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느님'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외적으로 아무리 안전한 상황에 놓여 있어도 내면이 불안한 사람에게는 평화가 없습니다. 그들은 모기 한마리에 성가심을 느끼면서 평화를 깨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볼리비아에서 아무리 힘든 하루를 보내도 집에 들어와서 샤워를 하고 나면 개운함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무리 깨끗하고 안전한 상황에서도 새로운 불평거리를 찾아내는 사람을 마주하곤 했습니다.
우리가 평화로울 수 있는 이유는 하느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우리에게 '궁극의 평화'를 선물하십니다. 바로 죄와 영원한 죽음에서의 자유가 그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올바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잠시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다시 다가오는 삶의 도전 앞에서 마음이 무너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마태 10,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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