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신자분들의 '오해'와 '곡해'를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요?
무엇보다도 그들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어릴 때에 그릇된 지식을 습득한 아이가 자신에게 탓이 있는 것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우선적으로 이 관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들의 시선에는 우리가 '그릇된 종교'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나름으로는 우리를 그 그릇된 종교에서 꺼내 '구원'으로 다가가게 도와주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은 그들의 이 신념이 꽤나 두텁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지금껏 생활해오고 머물러 온 종교적인 문화권 안에서 하루 이틀 사이에 형성된 관념이 아니라 꽤나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세뇌를 당해온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섣부르게 그들의 그 관점을 돌리려고 한들 잘 되지 않을 것이 뻔한 일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그들을 설득할 만한 올바른 교리 지식이나 교양 정보가 없기도 합니다. 물론 이 부분은 보완될 수 있고 보충될 수 있어서 필요한 지식을 습득해 나갈 수 있겠지만 개신교 측에서는 항상 새로운 논쟁거리를 만들고 더 애매하고 곤란한 상황을 조성할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지고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말 듣고 싶어하는 귀가 열린 사람이 아닌 다음에는 대부분 우리를 이기고 싶어서 나서는 것이지 진정한 대화를 하고자 다가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저들의 일종의 논쟁 시도에 '반응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은 어떤 것이든 우리가 내미는 설득의 시도에 부정적인 반응을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정할 수 없는 삶으로 응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하느님을 진실로 알고 그분의 가르침을 삶에서 실천해서 그들이 우리의 생활을 보고 도저히 부정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말은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고 심지어는 거짓과 사기를 칠 수도 있지만 구체적이고 꾸준한 실천적인 삶은 쉽게 부정될 수 없는 것입니다. 개신교 신자분들에게 관용과 온유로, 사랑과 인내로 다가서 주시길 바랍니다. 그 사랑의 실천이 그들 눈에 드리워져 있는 미혹의 가림막을 벗겨 내고 더 풍부한 신앙 유산이 가득한 가톨릭 교회로의 초대를 가속화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공격해서 그의 논리를 무너뜨릴까 고민하지 마십시오. 차라리 우리가 마땅히 알아야 할 가톨릭 교회의 보편된 진리를 탐구해 나가고 그것을 일상에 적용시켜 나가십시오. 하느님은 당신을 믿고 따르는 자녀들을 모두 구원으로 초대하고 싶어하십니다. 그러니 공연히 우리끼리 서로 다투고 미워하고 증오하느라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서로의 지식을 경쟁하지 마십시오. 서로 사랑하십시오. 서로 싸워 이기려는 시도 속에는 사랑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요한 13,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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