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이 일을 알지 못하게 조심하여라.” 하고 단단히 이르셨다.
그러나 그들은 나가서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그 지방에 두루 퍼뜨렸다.
(마태 9,29-31)
하나는 알고 다른 하나는 몰랐던 이들. 육체의 눈을 떠버렸지만 마음의 눈을 올바로 뜨지 못해서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일을 수행하지 않고 반대로 실천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앞에 있는 사람의 위대한 '치유' 능력을 신뢰했습니다. 그 신뢰로 인해서 자신의 감겨져 있던 육체의 눈을 뜨게 됩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을 '알리지 말라'는 주님의 명을 지키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훗날 옳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게 될 일이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예수님의 적대자들이 그분이 하신 일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고 그분의 일에 맞서는 내적인 힘을 형성하게 됩니다.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였다. (마태 9,34)
우리는 때로 겉으로 일어난 일에 집착한 나머지 그 일의 내적 가치를 올바로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사람이 외적 성공을 거두면 자연스레 그 내적인 도전이 다가오게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연예인이 아주 어린 나이에 성공을 하면 그 결과로 다가오는 인기와 부에 취해서 타락의 길로 초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감지하고 미리 예방할 줄 아는 이는 없습니다. 수많은 연예인들이 그래서 성공 후에 다가오는 여러 유혹들에 시달리고 바닥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하느님의 아들에게 눈 먼 이를 고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한 일, 죽은 이를 일으키는 일도 할 수 있는 분입니다. 중요한 것은 영혼의 눈을 뜨는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영혼의 눈을 뜨게 될 때에 우리를 바로잡아 줄 인도자가 필수적입니다. 당연히 예수님께서 그 역할을 하시고 우리는 그분의 말씀에 순명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가톨릭 교회에는 예로부터 '순명'의 가치를 드높여 왔습니다. 거룩한 순명 안에는 하느님의 뜻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으로는 장상의 명이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그에 순명함으로 인해서 얻어지는 내적인 유익함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외적 성공에 취하는 이들, 외적 결과만을 중요시하는 이들은 흔히 이 순명을 힘들어합니다. 자기 자신이 행하는 일이 최고라는 교만에 사로잡히는 것이지요.
소경들은 눈을 떴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그들의 불순명은 그들의 영혼의 눈을 닫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반쪽짜리 믿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화려한 힘을 믿었지만 그분의 진정한 메시아적 사명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그들의 불순명이었습니다. 주님의 명을 거스르는 것이 곧 죄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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