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한 이들은 주님 안에서 기쁨에 기쁨을 더하고
사람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이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포악한 자가 없어지고 빈정대는 자가 사라지며
죄지을 기회를 엿보는 자들이 모두 잘려 나가겠기 때문이다.
이들은 소송 때 남을 지게 만들고
성문에서 재판하는 사람에게 올가미를 씌우며
무죄한 이의 권리를 까닭 없이 왜곡하는 자들이다.
(이사 29,19-21)
원래 소송이라는 것은 공정을 회복하는 것인데, '남을 지게' 만드는 이들이 있습니다. 법이라는 것은 잘못 이용하면 그 자체로 하나의 무기가 되어서 법을 주도면밀하게 연구한 이들이 그것을 통해서 악인들의 손을 들어 주기도 합니다. 오늘날에도 세상 법정에서는 바로 이 법의 맹점을 이용해서 '남을 지게' 만드는 이들이 실제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재판에서 승리를 거머쥐고 그 이득을 빨아먹고 살지요.
성문에서 재판하는 사람은 올바름을 추구하려는 사람을 상징합니다. 합당한 권위를 가지고 있기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재판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이에게 정면 승부를 거는 것은 안 될 일입니다. 따라서 '올가미'가 필요합니다. 계획된 덫, 상대의 약점을 노려 그것을 쥐고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계략, 획책, 속임수 등등 갖가지 방법을 통해서 정면 승부를 피하고 상대의 약점을 쥐고 흔들고자 시도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서 무죄한 이들의 권리를 뒤틀어 버려야 합니다. 있는 이의 주머니돈을 보전하기 위해서 가난한 노동자들의 권리를 무너뜨려 버립니다. 정반대도 가능합니다. 정당하게 벌어들인 몫을 빼앗으려고 죄 없는 그의 권리를 무너뜨려 버립니다.
이런 이들의 기본적인 성향 안에는 '포악함'이 숨어 있습니다. 사나운 성향을 지니고 있고 악한 의도를 적극적으로 실천합니다. 또한 그들은 빈정대기를 즐깁니다. 정면에서 절대로 말하지 못하는 내용을 뒤에 가서 여론을 형성하고 상대의 명예를 실추시키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죄지을 기회를 엿봅니다. 그들은 죄를 통해서 자신이 목적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하느님의 거룩한 방법으로는 세상 안에서 큰 성공을 거두기가 거의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에 그들은 쉽고 빠른 방법, 즉 죄를 통해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자 합니다.
이처럼 어둠을 즐기는 세상이 복잡하다는 것은 명백한 일입니다. 반면 하느님을 따르는 이들은 겸손하고 소박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쁨이 넘쳐 흐릅니다. 단순한 삶에는 단순한 기쁨들이 즐비합니다. 복잡하게 원하는 것을 추구해서 마침내 얻게 되는 것은 안타깝게도 얼마 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평소의 상태가 기쁨으로 넘쳐 흐르게 만들어야 마땅합니다. 성실하게 하루의 삶을 살고 그것으로 기쁨을 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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