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가 성장해서 어른이 되는 동안에는 수많은 실수를 하게 됩니다. 그 많은 오류와 실수를 통해서 그것을 수정해 가면서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여정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갈망하면서도 이런 저런 오류에 빠져들게 마련이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겪고 체험하면서 다시 방향 수정을 하고 빛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헌데 모든 사람들이 이런 순탄한 길로만 걷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람들은 앞서 서술한 여정과는 정반대로 행동하곤 합니다. 즉, 일이 틀어져 가면서 수정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것들이 망가지고 나서야 비로소 수리를 받으러 온다는 것이지요. 차를 타고 가면서 우리는 모든 감각을 총동원합니다. 혹시 이상한 소리가 들리지는 않는지, 무언가 타는 듯한 냄새가 나지는 않는지... 그리고 그러한 낌새가 느껴질때면 차를 멈추고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무리하게 운행을 하다가는 큰 사고로 이어지는 법입니다. 그때 가서 수리를 하려고 하면 차를 폐차하던지 아니면 막대한 수리비를 내던지 해야 합니다.
영혼의 사정에는 '요령'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영혼은 망가지기 시작하면 서서히 망가져가고 가장 확실하게 망가져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영혼을 다잡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몸이나 재산은 소중히 여길 줄 알면서도 정작 자신에게서 가장 중요한 영혼은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든 말든 아무 상관 없다는 듯이 행동합니다.
영혼이 망가지면 어떤 결과가 드러나게 될까요? 무엇보다도 우리 내면에 기쁨이 사라지게 됩니다. 또 영혼이 망가졌다는 것은 우리가 '죄'에 빠져들어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평화'도 없게 됩니다. 서투른 영혼은 그런 자신의 불안정을 만회하기 위해서 '회개'를 찾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쾌락을 찾아 다닙니다. 그러는 동안 영혼은 더욱 망가져 버리고 맙니다. 그러다가 훗날 세상에 기댈 곳이 하나도 없어지게 될 때에야 비로소 그 영혼은 하느님에게 되돌아올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하느님은 잃어버린 양을 찾는 분이라서 그분의 '자비'는 무한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하느님 측에 있는 게 아닙니다. 바로 우리 자신들에게 있습니다. 회개의 여정을 시작하려고 할 때에 살짝 비틀어진 것을 바로 잡는 것과 심하게 부러진 것을 다시 붙이는 것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회개의 뜻을 발하다가도 낙담해 버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많이 망가지기 전에 고치러 와야 합니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여러가지 성사를 통해서 그 여정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이 신앙이라는 것 자체를 '어리석음'이자 '고리타분'한 것, '유행에 뒤쳐지는 것' 쯤으로 생각해 버리고 맙니다. 아닙니다. 신앙이야말로 우리의 영혼을 바로잡는 진정한 힘이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에게 신뢰를 두고 우리의 영적 여정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심하게 망가지기 전에 미리미리 점검 받고 수선해 두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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