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우리는 그걸 '데모'라고 불렀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사람들이 하는 시위를 데모한다고 했다. 철없던 국민학생이던 나는 그저 그 역사의 현장 속에 관찰자로 있었다. 때로 시장 가는 길에 흩날리던 최루탄 가루를 조금 맡으면 코가 매캐하고 눈물을 찔끔 흘리기나 했을 뿐, 어린 마음에 어른들이 무엇 때문에 데모를 하는 건지 전혀 알지 못했다.
내가 살던 아파트는 시내에서 나와서 금오공대로 가는 길목에 있었다. 그래서 '데모'라는 걸 하면 경찰과 대학생으로 구성된 시위대가 우리 아파트 앞 길에서 대치하곤 했다. 어떤 날에는 대학생들이 아파트 담벼락을 넘어 몸을 피하기도 했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그 학생들을 자기 자식인양 숨겨 주기도 했다. 우리는 안전한 유리창 뒤에서 그 모습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느 날은 놀이터에서 노는데 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시위 진압대가 우리 아파트 경비실 앞에서 최루탄을 정리하던 중에 하나가 터진 모양이었다. 매운 맛에 혼쭐이 나면서도 다가가서 구경을 했다. 한 아저씨의 발목에 최루탄 조각이 박혀 피가 흐르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당시에는 툭하면 데모를 했기 때문에 친구들과 나는 데모가 시작되는 기미를 이미 알아챌 수 있었다. 항상 시위대의 북소리와 함성을 필두로 데모가 시작되면 우리가 하던 놀이는 끝나고 저마다의 집에 숨기 바빴지만 이날은 남다른 걸 해보기로 했다. 최루탄이 터지면 눈이 따가우니까 물안경을 쓰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옥상에 올라가 처음부터 끝까지 구경을 해보자는 아이디어였다. 그래서 친구 한 명과 집에서 물안경을 꺼내와서 옥상으로 올라갔다. 시위를 구경하다가 결국 경찰이 최루탄을 터뜨렸고 우리는 헐레벌떡 물안경을 썼다. 그러나 눈만 가리면 되리라던 생각은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었다. 매캐한 연기가 코를 자극하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온 얼굴이 따가워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 군인이 되어서 체험하게 된 화생방 훈련에서도 죽을 맛이었는데 그 어린 꼬마 아이들에게 밀어닥친 최루탄의 연기는 지독한 고통이었다. 우리는 비명을 지르며 집으로 황급히 도망쳤고 어떻게든 이 따가운 기운을 몰아내 보겠다고 세숫대에 물을 틀어 얼굴을 씻으려 했다.
이건 더 큰 실수였다.
최루탄 가루를 가득 뒤집어쓴 얼굴에 물이 닿자마자 그 따가움은 배가 되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아둥바둥대던 사이 최루탄의 기운이 사그라들었고 우리는 안정을 되찾았다.
'데모' 하면 떠오르는 그날의 기억을 적어 보았다.
댓글
되게 기발하다 생각했는데 역시전.. 화생방훈련을 안해본 게 들통났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