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이들이 먹고도 남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2열왕 4,43)
주님의 은총은 너끈합니다. 부족한 적이 없었습니다. 달라는 사람에게는 충분하고도 남을 양이 주어집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하느님에게 감사하기보다 투덜대기 일쑤입니다. 왜 그런 걸까요?
주님이 주시려는 것, 그리고 우리가 받으려는 것. 이 두가지가 서로 다른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좋은 것만 받으려고 하고 주님은 당신이 너끈히 주시려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의 빵’에 관한 관점이 서로 다른 셈입니다.
주님이 주시려는 빵은 먹고 영원히 살 수 있는 빵입니다. 일시적인 배불림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를 진정으로 살리는, 영원히 살리는 빵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빵은 세상의 빵, 우리의 조상들이 먹고 다들 죽어간 그 빵입니다. 그래서 서로 방향이 다른 셈입니다.
우리는 더 많은 재산, 학벌, 명예, 권력, 미모와 같은 것을 원합니다. 새 차를 갖고 싶어하고 새 옷을 사고 싶어하고, 남들에게 보다 더 이쁘게 보이고 싶어하고 그들의 관심을 사로잡고 싶어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세상의 것이 많이 필요합니다. 어떻게든 세상 안에서 으뜸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주님은 당신의 외아들을 십자가에 죽도록 하셨습니다. 가장 소중한 아들이 가장 낮은 곳에 머물도록 하신 것이지요. 마치 가장 낮은 곳으로 물이 흘러들듯이 당신의 아들을 가장 낮은 곳에 두시고 그리로 다가서는 사람들이 거기 고인 생명의 샘을 마실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은총은 너끈합니다. 은총은 비처럼 모두에게 내리니까요. 그러나 그것을 모아 들이는 이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 그분을 따라서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이들이지요.
주님의 은총은 너끈합니다. 부족한 적이 없었습니다. 달라는 사람에게는 충분하고도 남을 양이 주어집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하느님에게 감사하기보다 투덜대기 일쑤입니다. 왜 그런 걸까요?
주님이 주시려는 것, 그리고 우리가 받으려는 것. 이 두가지가 서로 다른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좋은 것만 받으려고 하고 주님은 당신이 너끈히 주시려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의 빵’에 관한 관점이 서로 다른 셈입니다.
주님이 주시려는 빵은 먹고 영원히 살 수 있는 빵입니다. 일시적인 배불림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를 진정으로 살리는, 영원히 살리는 빵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빵은 세상의 빵, 우리의 조상들이 먹고 다들 죽어간 그 빵입니다. 그래서 서로 방향이 다른 셈입니다.
우리는 더 많은 재산, 학벌, 명예, 권력, 미모와 같은 것을 원합니다. 새 차를 갖고 싶어하고 새 옷을 사고 싶어하고, 남들에게 보다 더 이쁘게 보이고 싶어하고 그들의 관심을 사로잡고 싶어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세상의 것이 많이 필요합니다. 어떻게든 세상 안에서 으뜸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주님은 당신의 외아들을 십자가에 죽도록 하셨습니다. 가장 소중한 아들이 가장 낮은 곳에 머물도록 하신 것이지요. 마치 가장 낮은 곳으로 물이 흘러들듯이 당신의 아들을 가장 낮은 곳에 두시고 그리로 다가서는 사람들이 거기 고인 생명의 샘을 마실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은총은 너끈합니다. 은총은 비처럼 모두에게 내리니까요. 그러나 그것을 모아 들이는 이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 그분을 따라서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이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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