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녀들은 하느님의 자녀들을 극도로 증오합니다. 너무나도 결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즐겨 노니는 곳을 애써 피하니 그만 있으면 자신들이 비참해지기 때문입니다. 자기들끼리 놀 때에는 모두 의미있고 심지어 멋있기까지 한 곳인데 말이지요. 그래서 세상의 자녀들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너무너무 싫습니다. 지금까지 구축해 온 모든 것이 부정당하고 파괴 당하는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알지 못할 불이 내면에서 피어오릅니다. 그리고 그 내면의 불은 언제나 외적인 결과를 동반합니다. 소소한 냉소에서부터 적극적인 반대와 박해에 이르기까지 그 내면의 불의 실천적인 형태는 참으로 다양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들은 일종의 '불가마' 속에 머무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바로 그 속에서 우리는 '구원'을 더 강하게 체험합니다. 만일 우리에게 아무 일이 없었다면 우리에게는 구원이 일어날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반대하는 그들의 불과 같은 증오 속에서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더 가까이서 체험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구원이 단순히 말 뿐만이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구원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구원을 바라볼 때에 그들을 반대하는 자들의 말문이 막히게 됩니다. 그들이 철저히 파괴되기를 기대했건만 오히려 그들이 하느님의 축복 속에서 머무르게 되는 것을 보면서 결국 악인들에게는 하느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피할 수 없는 증거가 주어집니다.
사실 하느님은 고통 당하는 의인들보다 그들 주변에 머물러 있는 세상의 자녀들에게 더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의인을 통해서 죄인들을 구원으로 이끄시려는 것이 그분의 큰 그림입니다. 구약의 예언자들과 예수님과 사도들이 언제나 '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이유는 죄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죄 안에 머물러 있는 이들이 듣고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빛이 강할수록 어둠도 더 짙어지는 법이어서 악인들은 진리를 전해주는 이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 통상적입니다. 그리고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스스로를 하느님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그들의 행동 그 자체가 누군가를 해치는 것인데도 말이지요.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하느님께서 너희 아버지시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할 것이다.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와 여기에 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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