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향이든 거기에 알코올을 섞으면 그 농도가 옅어지기 시작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라서 신앙의 본질은 뜨겁고 강하고 뚜렸하고 확신에 차 있습니다. 하지만 그 농도가 옅어지기 시작할수록 의심하게 되고 흐릿하게 되고 유연한 척 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참으로 하느님이시고 그분이 진정으로 부활하셨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 제자들은 뜨거웠습니다. 그리고 당대의 사람들은 다른 것에 물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치 뜨거운 불이 마른 장작에 쉽게 불붙어 타오르는 것처럼 사도들의 신앙은 주변에 널리널리 퍼져 나갔습니다.
오늘날은 상황이 다릅니다. 현대의 사람들은 갖고 싶은 게 너무나 많고 이루고 싶은 게 너무나 많은데 신앙의 불이 아무리 뜨겁에 타오른다 한들 마치 젖은 장작에 불을 붙이려고 시도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신앙은 영원을 위한 현세의 포기를 가르치는데 이미 물들어 있는 영혼 속에서는 그 목적을 이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금의 어르신들은 여전히 40대 50대의 욕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나이가 지긋하면 신앙의 꽃이 피어야 할 자리에 여전히 주저함과 미심쩍음과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직 잃을 게 많아서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열매맺지 못하는 이에게서 그 몫을 빼앗아서 열매를 맺는 이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가서야 자신들이 무엇을 가지고 있었던가 후회하기 시작하게 될 것이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때가 될 것입니다.
이 예수님께서는 ‘너희 집 짓는 자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이십니다.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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