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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오늘 미사를 간 공소는 한 자매의 봉헌으로 지어진 것입니다. 이 자매는 ‘기적의 주님’(señor de milagro)에게 남편의 불치병을 내어 맡기고는 치유를 받아 그 뒤로 이 공소를 짓고 미사를 드리는 자매입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도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감사의 눈물이지요.

감사는 받은 것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이 자매는 분명히 받은 것을 느꼈고 그 감사를 잊지 않는 것이지요. 감사 드리는 동안 자매는 행복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봉헌하고 헌신하는 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은 것이지요.

반면, 뒤집어 생각해보면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받은 게 없다는 걸 반증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미사는 감사의 기념제이거늘 우리는 받은 게 없으니 감사할 이유도 별로 없고, 미사는 그저 따분한 ‘전례’, ‘예식’으로 남아 버리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같은 마음은 아닙니다. 저마다의 마음의 품의 크기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하느님 앞에서 취하는 태도도 서로 다릅니다. 물론 혹자는 비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자매는 이미 큰 상을 받았으니 감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이지요. 하지만 그거 아십니까? 애시당초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런 상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리고 하느님은 정말로 우리 모두를 섬세하게 돌보는데도 우리는 그러한 것을 ‘기본’으로 간주해 버리고 감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적지 않은 이들은 생의 끝날까지 감사는 커녕 불만에 가득 사로잡혀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지요. 아니, 도리어 하느님에게 대들지도 모릅니다. 세상의 불의와 부정에 대해서 말이지요. 하느님은 선하시다는데 도대체 뭘 하고 계시냐고 따질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그래서 하느님은 당신을 만드셨습니다. 그 사태를 알아챈 당신이 뭔가를 하라고 말이지요.

우리는 배은망덕한 이들입니다. 시작부터 생명을 받고, 건강한 신체와 여러가지 능력을 받았음에도 오직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 그러한 것들을 써 오다가 결국 그 중에 하나라도 잃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하느님을 찾기 시작하는 아주 간사한 무리들이지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일을 시작합시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감사하며 일하는 일꾼이 부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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