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1서 3장은 7절부터 다음과 같이 시작됩니다.
자녀 여러분, 아무에게도 속지 마십시오.
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이는
그분께서 의로우신 것처럼 의로운 사람입니다.
죄를 저지르는 자는 악마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악마는 처음부터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마가 한 일을 없애 버리시려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씨가 그 사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녀는 이렇게 뚜렷이 드러납니다.
의로운 일을 실천하지 않는 자는 모두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첫 구절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속는다’는 것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간단합니다. 죄를 저질러도 된다고 종용하는 자들입니다. 누군가에 대한 증오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이런 짓을 했기에 우리가 충분히 증오해도 괜찮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입니다.
‘의로운 죄’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합리적인 악’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악한 의도에서 시작된 일을 굉장히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계획하고 시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이성에서 비롯되는 합리성이라는 것은 의로움을 잘 이루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지만 반대로 악을 저지르는 데에도 얼마든지 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많이 속았습니다. 죄에 머물러 있으면서 자신이 하는 어둠의 일이 ‘정당하다’고 주장하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하느님 안에서 다른 이를 저주하고 증오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하느님마저도 그런 이들을 저주할 것이라고 우겨대는 것이지요. 하느님이 외아들을 세상에 보낸 이유에 대해서 무시하고 거부하고 부정하는 자들입니다. 바로 그들이 속이는 자들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바로 그 어둠의 일을 없애 버리려고 오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바치기까지 죄인들을 불러 들이기 위해서 우리에게 다가오신 분이십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얼마나 영리한지 그런 선을 뒤덮고 어둠을 교묘하게 뒤바꾸어 그 시커먼 어둠을 선인 것처럼 드러내기 바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외적 종교활동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꾸미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외적으로 그들을 보살피는 흉내를 내어 가면서 사람들을 속이려고 들 것입니다.
여러분들 속지 마십시오. 외적인 껍데기에 휘둘리지 마십시오. 본질을 바라볼 줄 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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