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도발적인 제목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 또한 우리의 한측으로 고정된 사고를 되짚어보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없었지만 모든 것이 있다고 할 때에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취급을 당하는 기분을 고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역으로 우리가 아무것도 없다는 취급을 당하면 전혀 색다른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한국은 모든 것이 있는 나라다. 밤늦게 거리를 다니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로 치안도 훌륭하고 거의 모든 국민이 문맹에서 벗어나 있을 정도로 문화 수준도 높으며 음식점에서 가방을 의자에 걸어두어도 되고, 신발을 입구에서부터 벗어두어도 된다. 인터넷으로 물건을 고르고 사고 그 물건을 다음날 받아볼 수 있으며 책은 심지어 당일날 받아보기도 한다. 24시간 편의점이 곳곳에 있으며 어느 시간이든 야식을 시키면 배달을 해 주기도 한다. 인터넷의 속도는 가히 획기적이며 카드 하나만 들고 다니면 모든 결제가 가능하기도 하다.
과연 한국에 없는 게 무엇이 있을까?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그 없다는 것을 일부러 찾아 다니기도 한다. 온갖 여행을 다니면서 한국에 없다는 것을 다 발견해서 책을 적어내고 여행기를 만들어내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소개하기도 한다. 정말 한국은 없는 게 없는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이 글이 제목부터 의도하는 바와 같이 한국은 텅 비어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모든 소식이 순식간에 공유되고 모든 뉴스가 빛의 속도로 알려지지만 정작 그 엄청난 정보의 바다 속에서 자기 자신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이런 것을 해야 한다, 또 저런 것을 해야 한다고 저마다 주장하지만 정작 자신이 어느 길을 어떻게 가야 하는지 모르는 영혼들이 많다.
어른들도 돈과 자신의 욕구를 제외하고는 바르다는 인생길을 제시하기 힘들고 젊은이들도 세속적 의미의 성공 말고는 딱히 다른 롤모델을 갖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은 그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이 학원 저 학원에 시달리고 있으며 어르신들도 생의 마지막에 참된 보람이라 할 만한 것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 모든 것이 있지만 아무것도 없는 곳이 되어 버린 것이다. 무엇보다도 ‘신앙’이라는 것, 그것만큼 의미가 퇴색된 것이 없다. 순교자들의 후손으로 시작한 거창함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고 이제는 그들의 무덤 꾸미기에 여념이 없다. 그들이 순교를 할 정도로 뜨거웠던 신앙을 이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고 다들 외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힘겨워하기 일쑤다. 아이들은 ‘주일학교’가 아니라 ‘주일학원’과 다름없는 또 다른 공부를 하느라 힘겨워하고 교리교사들은 그런 아이들에게 어떤 ‘재미난’ 체험을 시켜줄까를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결국 세상에 우선권을 빼앗기고 만다.
그러나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여전히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역사는 늘 그것을 증명했다. 가장 어두움이 가득한 시절에 가장 큰 빛이 다가오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래서 하느님은 시대에 가장 적합한 예언자들을 고르시고 그 시대에 가장 필요한 모습으로 보내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전히 희망은 생생히 살아있고 믿는 자는 그 결과물을 얻게 될 것이다. 하느님의 사전에 실패라는 것은 없다. 왜냐면 그분은 영원을 쥐고 계신 전능하신 분이시고 그 영원과 전능을 이겨낼 수 있는 존재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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