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이 다가올 때 그것을 알아듣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세상이 부르는 방식으로 부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매혹적인 요소로 우리를 불러서 우리 속에 숨어 있는 욕구를 한껏 끌어올리고 그 욕구로 인해서 우리가 다가서게 합니다. 마치 강렬한 불량식품의 맛과도 같습니다.
반면 하느님의 부르심은 은근하게 다가옵니다. 아무도 모르게 다가와서 잔잔한 여운을 남기지요. 사람의 내면을 서서히 차오르게 하는 부르심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도외시되는 부르심입니다. 그렇기에 그 길을 선뜻 따라나서는 사람도 없습니다.
부르심이라고 해서 모두 사제 성소나 수도자 성소만 생각한다면 큰 착각입니다. 하느님을 향해 걸어나가는 모든 여정이 ‘부르심’이 됩니다. 한 가정 주부가 진정으로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길을 따를 때에 그녀가 하는 모든 집안일이 그 자체로 성화가 됩니다. 늘 차리는 식사를 차리고 청소를 하더라도 그녀는 진정한 평화 중에 그 일을 묵묵하고 성실하게 수행해 내게 됩니다. 하지만 반대로 부르심이 없다면, 그는 아무리 교회 안에 거룩한 직분을 맡고 있다 하더라도 큰 의미를 얻지 못하게 됩니다. 그의 삶은 고독하고 삭막하게 되며 그 공허를 채울 위안 거리를 찾다가 엉뚱한 길로 빠지게 됩니다.
사무엘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그는 자신이 처음 겪는 체험에 놀라 반응하긴 했지만 합당한 반응이 아니라 엉뚱한 반응을 하고 말았습니다. 즉, 하느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는데 인간에게서 그 답을 찾은 것이지요. 물론 엘리는 하느님의 예언자이긴 했지만 여전히 인간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엘리 역시도 사무엘이 받은 부르심을 두 번이나 소홀히 하고 맙니다. 그리고 결국 깨달음을 얻은 엘리는 사무엘에게 적합한 조언을 하게 되고 사무엘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원래의 그 가치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이끄는 힘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다 다가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찾는 이들은 예수님이 필요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 예수님이 필요치 않다고 여기는 이들은 그분을 찾지 않았습니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식으로든 당신을 찾기만 하면 만나 주시고 그를 참된 자유로 이끌어 주십니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에는 자신의 자유가 속박되어 있으면서 그것을 해소시켜 주실 분을 전혀 찾지 않는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매이는 분이 아니라서 당신의 길을 가십니다. 그 길은 복음을 전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오늘날에도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유효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도와야 하지만 사람들에게 매여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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