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선점하려는 일은 '이기성'을 바탕으로 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너무나도 기본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힘을 선점해야 자신의 이기성을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획득한 힘을 절대로 나누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자는 자신의 부를 특권으로 삼고 그것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난한 이들이 절대로 자신이 차지한 특권을 함께 나누지 못하도록 최선의 방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그건 힘의 논리가 기본이 되는 사회에서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이는 동물들의 세계에서도 기본입니다. 먼저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그 자리를 내어놓지 않는 것은 어느 동물에게도 기본적인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도 기본은 동물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그 흐름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일상입니다. 하지만 그게 '마지막'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이들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을 수용하고 그분이 의도하는 바를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지요. 바로 여기에서 신앙과 세상이 충돌하는 지점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 어느 예언자도 이 부분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충돌을 야기했고 그래서 세상에서 배척을 당하는 운명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예언자는 부의 재분배를 꾀하거나 사회구조를 전복시키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정당함'을 회복하려는 것 뿐입니다. 자연스러운 구조를 넘어서서 인간의 이기심으로 한 측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는 것을 하느님의 뜻대로 돌려 놓자는 것이었지요.
회사의 사장은 자신이 성실히 일해 번 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것 자체가 죄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는 골프를 칠 수도 있고 좋은 자동차를 탈 수 있습니다. 그건 그가 정당하게 번 것에서 정당하게 누릴 수 있는 몫입니다.
문제는 전혀 다른 곳에 있습니다. 그의 누적된 부가 누군가에게 정당히 주어져야 할 몫에서 빼앗아 온 것이라면 거기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한 성실한 외국인 노동자에게 정당하게 주어야 할 월급을 가로채서 지급 기일을 미루면서 자신의 이기적 야욕을 채우고 있는 돈이라면 그 돈은 노동자의 눈물이 서려 있는 피 묻은 돈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힘의 논리를 따라 살면서 자신의 이기적 탐욕까지 채우는 세상의 자녀들 가운데 하느님의 자녀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뜻을 우선시하고 하느님께서 아름답다고 여기시는 일을 실천하는 이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하느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예언자도 있습니다. 그들은 그런 이야기를 듣기 싫어하는 이에게 말을 해야 하고 알려야 하니 당연히 박해는 따 논 당상입니다.
수많은 예언자들이 그렇게 살아갔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미움을 받고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그들의 영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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