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좌에 앉아 계신 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 (묵시 21, 3-5)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 중에 하나는 지금 우리 눈 앞에 생생히 펼쳐져 있는 세상에 근본적인 변화가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즉 이전 것들이 사라지고 전혀 새로운 세상이 시작될 것이라는 예상을 우리는 지금의 이 세상 안에 살아가면서 좀처럼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영역은 바로 '믿음'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믿음이라는 새로운 시야를 통해서만 바라볼 수 있는 영역이기에 우리로서는 함부로 상상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이 믿음이라는 것은 돈을 주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오로지 자신의 내적 '결의'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입니다.
지난 삶의 영역에서 새로운 삶의 영역으로 옮아감, 그것이 바로 신앙인들이 지닌 믿음입니다. 즉 세상의 원리와 원칙에서 벗어나서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 안에서 새로이 시작된 원리와 원칙으로 젖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기본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래서 다가올 세상에는 이 사랑이 만발할 것이고 그곳에서는 그 어떤 죽음도,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이를 수용하기에는 너무나도 흐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에로 다가가지 못하게 가로막는 가장 근본에는 바로 우리의 이기심과 탐욕, 그리고 그로 인해서 야기된 죄와 그 악습이 존재합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무리 건전한 가정의 기쁨을 가르쳐봐야 크게 그의 마음이 변하지 않습니다. 어딘가에 사로잡히기 시작한 마음은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방법이 없는 것일까요? 그런 이들에게 유일하게 남은 방법은 누군가가 꾸준히 빛을 비춰주는 것 뿐입니다. 다만 그들이 익숙한 방식으로 말이지요. 마치 새로운 맛을 들이게 하는데 전에 먹던 음식에 조금씩 섞어 주는 것과 같은 방식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복음 선포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난생 처음 가보는 곳에 파견되는 식의 선교사가 아니라 우리가 이미 살고 있는 영역의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당신 말고는 그 누구도 다가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일어나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고 계시고 우리는 거기에 동참해야 합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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