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차에 엔진이 존재하고 그 엔진을 통해서 차가 움직이듯이, 인간의 내면에는 지니고 있는 생각을 행동을 표출하는 영역, 즉 '의지'가 존재합니다. 이 의지는 개미나 벌이 그런 것처럼 공통된 신호를 함께 받아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지닌 의지를 '자유의지'라고 부릅니다.
이 자유의지는 실로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바로 생각의 힘을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결과로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다른 모든 동물들은 주어진 '본능'에 의해서 정해진 역할을 하고 움직일 뿐이지만, 인간은 상상하고 유추하고 분석하고 가설을 세우는 등의 다양한 내적 활동을 자신의 의지로 실현해 내곤 합니다.
우리는 사회를 바라보면서 마치 동물을 다루듯이 생각합니다. 즉, 사람이 정해진 규칙과 규정대로 움직여야 하고 거기에서 어긋나는 것에는 적절한 제제를 가하면서 보완해 가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실 그 움직임 속에는 이 인간의 '자유의지'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의지는 '욕구'를 따릅니다. 그래서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지요. 그러나 인간이 다른 동물과 남다른 것은 이 '욕구'가 보다 고차원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영원'이라는 것을 배워 알고 그것을 바라게 되면서 지상의 '정당한 욕구', '본능적 욕구'까지도 제어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자신의 본능적 욕구에 몰입해서 살아갑니다. 말 그대로 '짐승'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삶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차를 타고 다니고 아무리 호사스러운 집에 산다고 해도 밀림의 왕국의 양육강식의 법칙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것 뿐입니다. 다만 그것을 '인간 버전'으로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이 인간의 '자유의지'가 변화할 때에 결국 인간 사회 전체가 진행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는 관계 속에서 '전쟁'이라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싸울 마음이 없을 때에는 사회 안에서 '전쟁'을 외치는 사람의 목소리가 사그라들 수 밖에 없습니다.
정치인들은 다수 국민의 의견을 대변할 뿐입니다. 그리고 다수 국민이 증오에 휩싸여 있고 그 증오의 상대자를 죽이고 싶어 한다면 정치인은 아무 두려움 없이 그들의 대표자로서 그 일을 수행해 내는 것 뿐입니다.
내면의 변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외적으로 아무리 제도를 마련하고 틀을 마련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제도와 틀에는 언제나 빈틈이 있게 마련이니까요. 공무원들이 아무리 도둑질을 못하게 하는 법안을 만들어도 결국 훔쳐서라도 돈을 벌겠다는 욕구 자체가 정돈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없던 규정도 만들어내서 도둑질을 할 뿐입니다.
인간 내면의 이 거대한 힘인 '자유의지'에 집중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들의 의지는 오늘 어디를 향해 있는지 살펴 보았으면 합니다. 우리의 내면이 정돈되지 않으면 주변이 아무리 조용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주머니 속에 캬라멜을 넣고 다니면 언젠가는 녹아 늘러붙게 됩니다. 시간 문제일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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