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두려움은 미지의 대상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입니다. 우리가 마주한 대상에 대해서 그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할 때에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잘 아는 대상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에 상응하는 대책을 세우면 되니까요.
예컨대 전쟁이 난다는 소식이 두려운 이유는 어떤 과정으로 어떤 결과가 미치게 될지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적군의 공세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느 지역부터 침공해 들어올지 알면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피난을 가던지 수를 내면 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생애 가운데 우리는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 하고 따라서 두려움은 인간의 너무나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이를 극복하게끔 도와주는 것이 있으니 바로 '신앙'입니다. 신앙은 근본적인 두려움을 없애 줍니다. 인간이 두려워하는 대상의 마지막에는 언제나 '죽음'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죽음이 다가오기 때문에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죽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의 끝이 죽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의 도약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그때는 두려움은 사라지고 맙니다.
우리가 지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은 근본적으로 '부활'에 대한 신앙입니다. 달리 말하면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신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죽지 않습니다. 우리는 부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신앙을 형성하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3년이나 쫓아다닌 제자들도 제대로 형성해 내지 못한 신앙이니까요.
그러나 하느님은 각자의 삶의 자리 안에서 초대를 하십니다. 언젠가 어느 순간엔가는 하느님으로부터 '영원'을 향한 초대를 받습니다. 우리의 삶이 유한한 것이 아니라는 확신과 더불어 영원한 진리의 가치를 이해하게 되는 여정으로 초대를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저마다 주어진 자유에 따라서 긍정과 부정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수도 없이 많은 기회를 가졌는데도 그 응답을 형성해 내지 못하는 것은 하느님에게도 '의아한' 일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정당하게 물을 권리를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직접 보고 들은 것들에 대해서 '왜 믿음이 없는지?'를 추궁할 수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더 마음을 잘 살피고 다잡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님이 이런 질문을 하지 않으시도록 미리부터 믿음의 삶을 다져가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두려움이 없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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