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여성이 가슴을 드러내면 부끄러운 일이 되지만 볼리비아에서는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엄마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흔히 우리는 가난한 것이 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올바른 가치를 길러온 이들에게 필요한적절한 것을 지니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이처럼 세상의 수치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가변적인 것입니다. 과거에는 수치였던 일이 지금은 아닐 수도 있고 과거에는 자랑스러웠던 일이 지금은 수치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종류의 일이 다 변화무쌍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다면 그 가치에 상응하는 일은 언제나 자랑스러운 일이 될 것이고 그 반대의 입장에 놓인 것은 수치가 될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분이 의도하는 바는 최종적으로 자랑스러움이 될 것입니다. 반대로 그분이 원치않는 것은 결국 수치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거룩하고 고귀한 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이 실제로 수난 당하던 동안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분을 철저하게 외면 당하셨고 모욕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그런 분을 길에서 마주치기라도 했다면 일부러 멀리 돌아갔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드러내는 외면은 우리에게 수치스러운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당신이 당하고 계신 일의 의미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수치가 아니라 자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영원하신 분께서 의도하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버지를 알지 못했고 그분의 외아들이 가는 여정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들을아무렇게나 다루었습니다. 그분의 가치를 이해하기에 그들의 눈과 귀는 너무나도 닫혀 있었던 것입니다. 반면 아들의 눈과 귀는 열려 있었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이 여정을 가야 같은 여정을 걷고 있는 이를 위로할 수 있고 또 그 여정을 통해서 모든 이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놓을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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