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을 악의 모습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있으니 사람들은 지레 그것을 알아보고 피합니다. 하지만 악을 '선'으로 가장해서 실천하면 사람들이 그것이 악인지 모르고 다가서게 되고 결국 그의 내면에 숨어있던 악을 체험하고 난 뒤에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위선이라는 것이 그것을 실천하는 이에게 배로 더 중한 책임을 묻게 되는 이유입니다. 위선을 저지르는 자는 악을 실천하는 잘못과 더불어서 선을 망가뜨리는 잘못을 함께 저지르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착함'이 좋은 가치로 인식되기 때문에 속에 악한 것을 지니고 있더라도 외적으로는 열심한 척, 신심있는 척 하는 위선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오히려 세상보다 더 많이 있습니다. 세상은 악해도 결과가 좋으면 인정받기도 하는데 교회에서는 외적으로 매섭고 사나우면 배척당하기 때문에 본모습을 숨긴 악이 더 활개를 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위선적인 모습을 지닌 이들에게 엄하게 경고하십니다.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면서 그들을 경계하라고 하십니다. 사실 그들을 알아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들 주변에 가서 머물러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느끼게 됩니다. 선한 얼굴을 하고 다가와서는 나의 비밀을 모조리 캐내려는 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비밀이 모든 이에게 알려져서 곤혹을 겪으면 비로소 그의 본질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그들은 자신의 속에 숨긴 것이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날까지 계속 하던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가 하느님의 전능을 올바로 깨닫게 되면 소위 '회개'를 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어둠을 잔뜩 품은 채로 죽음에 이르게 되겠지요. 그리고는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참으로 안타까운 영혼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섣불리 돕겠다고 나서다가는 그들의 교활함에 오히려 사로잡혀 그나마 성하던 나의 영혼도 해악을 입을 수가 있습니다. 저마다의 능력치에 따라서 활동해야 하고 아무리 선한 뜻도 그 가능성을 미리 잘 타진해서 일을 추진해야 합니다.
내가 수영도 배우지 못했는데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겠다고 나서다가는 둘 다 익사하고 맙니다. 적어도 구명정이라도 하나 들고 물에 뛰어들어야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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