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루카 2,38)
여성들은 그 특유의 감수성과 섬세함으로 주변에 수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역사는 남자에 의해 이룩된 듯이 보이지만 그 곁에는 언제나 여성들의 눈에 드러나지 않는 활동이 있었습니다. 남자가 힘들게 사업을 마치고 들어오면 그 곁에는 아내가 다가와서 이든 저든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지요. 그런 아내에게 힘을 얻어서 더 굳건하게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는 남성이 있는가 하면 또 정반대로 그런 아내가 싫어서 일부러 밖으로 나다니면서 자기 개발을 하는 남성도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여성들은 모이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주고 받습니다. 그것을 ‘수다’라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말이 많은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말의 내용과 의도가 중요한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여성들의 수다는 얼마든지 거룩해 질 수 있습니다.
바로 성경의 ‘한나’와 같은 여성들이 대표격입니다. 이 여성은 아기 예수를 만나게 되고 그 거룩함에 감동하여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 여느 복음 사도가 한 일보다 더 많은 일을 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아직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그 일을 했으니 어쩌면 그 가치는 더욱 드높은지도 모르지요.
우리 본당의 자매들의 수다도 그러했으면 좋겠습니다. 남편에 대한 비난이나 이웃에 대한 험담이 아니라 진정으로 빛을 찾아나가는 여정에 대한 나눔이었으면 좋겠고 그 빛을 찾아 나가는 데에 도움이 되는 여러가지 정보들을 주고 받는 거룩한 자리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말들은 훗날 셈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이 현세 안에서 일어날 수도 있고 영원 안에서 일어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헌데 우리가 한 말마디들이 모두 쓰잘데기 없는 것이고 나아가 다른 이를 해치는 것이었다면 훗날 돌아오게 될 그 결과물은 과연 무엇이 될까요? 반대로 우리가 한 말이 다른 이의 구원을 도모하는 것이고 누군가를 살리는 것이라면 또 그러한 결과물은 어떠한 것이 될까요?
우리는 성모님을 본받아 주변에서 보고 듣는 것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할 줄 알아야 하며, 이 한나라는 여인을 본받아 구원의 기쁜 소식을 주변에 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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