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대상이 다가오더라도 저마다 기다리는 것이 다르게 마련입니다. 주인을 기다리는 개들이 있는가 하면 주인이 던져주는 소세지를 기다리는 개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을 기다리는 개들은 다른 이들, 도둑이나 강도가 오면 으르렁대고 짖겠지만 소세지를 기다리던 개들은 도둑이나 강도가 소세지만 던져 주면 그만입니다.
하느님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가 좋아하는 하느님’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진정한 하느님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제가 좋아하는 하느님만 기다리다가 허송세월을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 하느님’은 결국 허상이기 때문입니다. 그건 나의 욕구가 만들어 낸 환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엘리사벳과 성모님은 서로를 마주하면서 기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내면에는 하느님의 은총이 이룬 결과물들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것을 간절히 바라던 그분들은 서로를 참된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었지요.
우리는 과연 어떠할까요?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으며 무엇을 반기고 있을까요? 우리는 나의 심심함을 메꿔줄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요? 우리는 우리의 헛된 욕구를 채워줄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요? 아니면 진정으로 영원을 선물하시는 하느님을, 그분의 아들을, 그리고 그분의 십자가의 삶을 맞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요?
대림의 시기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곧 다가오시는 아기예수님을 잘 알아보려면 우리가 진정으로 기다리는 것의 실체를 올바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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