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짜여진 각본이고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의인이 이기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그렇게 만들어지는 이유는 현실이 반대이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는 의인이 핍박을 당하고 악인들이 이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악은 영리합니다. 악은 단 한 푼도 손해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렇기에 늘 깨어 있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 가운데 이익이 되는 것을 선별하고 손해가 되는 것을 피하려고 합니다.
이런 현실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려고 모인 본당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성당에 오는 것은 이미 지니고 있는 신앙을 향유하려고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없는 신앙을 찾아 얻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고, 또 심지어는 신앙의 그 어떤 연계 없이도 얼마든지 성당에 나올 수 있게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성당이라는 범주 안에서도 우리는 ‘악’의 움직임을 찾아볼 수 있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악은 언제나 손해를 보지 않고 이득을 보려는 움직임으로 드러납니다.
우리가 ‘신앙’을 진정으로 수용하게 될 때에 우리는 십자가를 끌어안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우리의 시선이 바뀌게 되고, 따라서 이미 알고 분별하고 있지만 때로는 참아 견디는 시간이 많이 늘어나게 됩니다. 즉, 이전에는 몰라서 당했지만 이제는 알면서 그것을 참아 견디는 것이지요.
그럼 결국 바뀌는 것은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몰라서 당하는 사람은 억울해 합니다. 하지만 알면서도 인내하는 사람은 최종적인 결과물을 알고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의인은 수치를 당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이 지상의 삶에서 영화로 대리만족하는 그 일이 바로 영원 안에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은 반드시 승리하십니다. 그리고 악은 이미 무너졌습니다. 다만 하느님은 악인이 하나라도 더 회개하기를 바라시는 분이시고 또 그들의 그 어리석음으로 의인의 내면에 거룩한 덕이 마련되기를 기다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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