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에도 성모당 상설 고해소에서 고해성사를 집전했습니다. 고해소는 들락거리는 사람은 많지만 사실 고백하는 죄의 내용은 다 비슷비슷한 것이 보통입니다.
부족한 외적 신앙생활을 고백하는 이(주일미사 불참, 기도생활 미흡)
말로 짓는 죄를 고백하는 이(거짓, 험담 등등)
누군가에 대한 다툼과 증오를 고백하는 이
부족한 외적 신앙생활을 고백하는 이들은 거의 대부분 미적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입니다. 물론 예외도 있습니다. 정말 충실한 신앙생활을 해서 다른 내적 어두움을 지니지 않은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지극히 소수에 불과하고 거의 대부분은 자신의 내면을 진정으로 맞대면 하고 싶지 않은 이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공이라는 의무 때문에 억지로 고해소에 끌려와서 뭐라도 뱉어 놓아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소홀함을 꺼내 놓는 이들입니다. 사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이 없는 이들이고 또 그것을 별로 개선시키고 싶지도 않은 이들이기에 이런 이들은 얼른 보속을 주고 잠시나마 용서의 기쁨을 체험하게 하는 것으로 끝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그렇게 싸게 받은 용서로 나가서 또다시 똑같은 상태, 즉 미적지근한 상태로 머물러 살게 될 것입니다.
말로 짓는 죄를 고백하는 이들은 사실 자신 안에 그러한 것에 대한 갈망이 존재하는 이들입니다. 이들은 호기심이 가득하고 또 허영이 있어서 곧잘 아닌 것을 그렇다고 하면서 자신을 꾸며대고 또 타인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평을 많이 하는 이들입니다. 이들 역시도 자신이 저지르는 행위의 심각성을 올바로 깨닫지 못하는 이상 같은 일들을 다시 반복하며 무미건조하게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자매님들이 이렇게 살아갑니다. 어쩔 수 없는 판공 때문에 억지로 고해소에 들어와서 자신이 늘 하는 취미활동인 ‘험담’에 대해서 고해하긴 하지만 사실은 그때 뿐인 이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다음 의무 고해 시기까지 절대로 고해소를 찾지 않다가 또 성탄 판공이 다가오면 어쩔 수 없이 들어와서 똑같은 죄를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개선의 의지가 별로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누군가에 대한 다툼과 증오를 고백하는 이들은 그나마 나은 편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신들의 어두움이 구체적인 외적 행위로 드러나고 있고 그로 인해서 자신의 어둠이 현실로 드러났기 때문에 그것이 마음 아픈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역시 고해성사가 급한 불을 끄는 용도로만 쓰이고 실천적인 개선이 뒤따르지 않으면 오히려 전보다 더 심해질 수 있는 이들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상처받고 자존심 상해 하는 것에는 굉장히 민감하지만 그것을 남들에게 저지르는 데 있어서는 둔감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이들에게는 자신들이 받는 상처만큼 남들도 상처받고 있으며 내가 원치 않는 무언가가 있다면 나 역시 남들에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반대로 내가 챙겨 받고 싶은 것이 있으면 남들도 그렇게 챙겨야 한다는 것을 주지시켜 줄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씩은 자신이 싸우고 왔는데도 어디까지나 본인이 정당하고 모든 탓은 상대에게 있으며 죽어도 용서가 안된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사실 굉장히 개선이 힘든 사람들입니다. 누군가에 대한 증오를 품고 하느님 앞에 고해를 하러 와서 자신의 결함없음을 주장하려고 드니까 얼마나 장님인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는 이루어지고 그에게는 그 다음의 선택권이 주어집니다. 그는 자신이 받은 용서 그대로 실천할 수도 있고 또 새로운 증오의 단계로 접어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번 나갔던 어둠의 영이 돌아오면 전보다 더 악한 영들을 데리고 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물론 이 외에도 비슷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당장 기억나는 것 몇가지만 추려 보았습니다. 고해보기 좋은 날입니다. 부활의 기쁨이 아무런 의미 없이 흘러가기 전에 서둘러 고해소 문을 두드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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