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필요한 것은 ‘복음화’입니다. 우리가 복음화 되는 것이 가장 우선적이고 시급한 과제입니다. 물론 그 복음화는 가장 기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배우기 힘들거나 어려운 교리가 아니라 예수님의 참된 가르침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너무나도 쉬웠던 예수님의 가르침, 그것은 하느님과 그분의 사랑, 그리고 그분이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나라에 대한 가르침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회복해야 합니다. 바로 거기에서 진정한 기쁨이 나오고 그 기쁨은 우리에게 살아갈 힘을 줍니다. 그리고 그 원동력에서 다른 이들에게 신앙을 전할 능력도 나오게 되는 것이지요.
지금의 교회는 덩치가 꽤나 커졌습니다. 그래서 그 커진 덩치를 일일이 수정하고 고치려고 들다가는 모든 시간과 노력을 엉뚱한 곳에 쏟아붓게 됩니다. 우리는 핵심에 집중해야 하고 당장 그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 일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장 가까이 있는 것, 바로 내 곁에 있어서 내가 시작하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본당에 봉사자 조직을 꾸려서 성지순례를 계획하는 것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드는 거대한 프로젝트입니다. 하지만 힘들어하는 아내의 손을 잡아 주는 것이나 짜증이 가득한 남편에게 상냥하게 대하는 것은 지금 당장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종류의 일들입니다. 복음을 구체적으로 사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일들을 실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하는 모든 일상의 일들 안에서 복음을 실천하는 것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복음을 들어야 하고 그 복음을 올바로 가르치는 가르침을 들어야 합니다. 복음을 배운다는 것은 어떤 ‘학술적인 가르침’을 심각하게 배우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배운다는 것은 일상의 일들로 정신이 없는 가운데에 잠시 마음을 돌이켜 다시 예수님을 생각하고 그분의 삶과 말씀을 떠올리는 것으로 충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복음의 장벽을 낮추어야 합니다. 지금 주변을 둘러 보십시오. 말씀 하나를 배우기 위해서는 어떠한 과정이 필요합니까? 어디에 등록을 해야 하고 일단 등록된 시간은 다른 것으로 활용하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현대의 바쁜 와중에 복음을 배우러 다닌다는 것은 일종의 사치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따라서 우리는 복음의 벽을 낮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일정 부분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마저도 모르는 이들이 늘 주변에 존재합니다. 왜 당장 시작하지 않을까요? 왜 내가 알고 이해하는 복음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고 전하지 못할까요? 그것은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과정이 전문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면서 학과 과정을 설치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만나는 사람마다 그 사람들이 가장 알기 쉬운 방법으로 복음의 핵심을, 즉 영원한 생명과 하늘나라를 전했을 뿐입니다. 우리 역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부라면 사람을 낚는 어부가, 우리가 회사원이라면 사람을 낚는 회사원이 될 수 있는 법입니다.
시작하십시오. 여러분의 텅 빈 양손을 채워야 합니다. 우리는 지옥에 가지 않는 신앙생활은 열심히 하지만 천국을 여기서부터 이루는 신앙생활에는 꽤 더딘 편입니다. 우리는 멸망하지 않기 위해서, 두렵고 겁이 나서 신앙생활을 하는 게 아니라 더 사랑하고 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저는 이 글을 적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가서 그렇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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