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과 이용은 명백히 다른 두 가지입니다. 돌봄은 사랑에서 기인하고 이용은 이기심에서 기인합니다. 돌본다는 것은 그 돌봄의 대상이 잘 되도록 정성을 기울이는 것을 의미하지만 이용한다는 것은 나의 욕구와 필요에 의해서 상대를 하나의 물건처럼 써 먹는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 '이용'을 자주 써 먹는 사람은 상대가 그것을 올바로 파악해 내지 못하도록 연막작전을 폅니다. 즉, 상대는 자신은 돌봄을 당하고 있다고 믿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놓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 작업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거짓말'입니다. 그리고 그 거짓말은 언제나 '사실'에 기초해서 하는 말입니다. 과거에 있었던 어떤 한 가지의 일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자신이 상대를 돌보고 있다는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용하는 이는 끊임없이 당근과 채찍을 반복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움직임의 근본 속에는 자신의 이기심이 들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이기성이 극대화되기 위해서 상대에게 잘 해 주기도 또 괴롭히기도 하는 것입니다. 잘 해 주는 방법은 상대가 원하는 사소한 것을 내미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좋아하는 물건이 될 수도 있고 작은 애정표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기적인 사람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상대에게 한껏 호의를 베풀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이가 상대를 억압하는 방법은 참으로 다양한데 과거의 잘못을 자꾸 꺼내서 양심을 괴롭게 하는 방법에서부터 반복해서 자기의 목적을 언급해서 세뇌를 시키는 방법, 심지어는 깽판을 치는 방법까지 참으로 다양합니다. 이기적인 사람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이 모든 방법을 다채롭게 써서 결국에는 목적을 달성하고 마는 것입니다.
선한 이들은 이런 점을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남을 괴롭힌다는 것 자체가 자신에게는 양심의 괴로움이기에 그 어떤 것도 함부로 시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악한 이들은 자신의 이기성을 한껏 발휘해서 선한 이들이 양보하는 영역을 야금야금 집어 삼키는 것이지요. 이것이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의 현실인 것입니다.
이 관계는 결국 어떻게 마감될까요?
최종적인 마무리는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입니다. 즉, 하느님의 선하신 계획은 선에 충실했던 이들을 당신의 나라에 모아들이고 악한 이들은 마른 장작을 모아 불에 던져 버리듯이 처분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최종적인 상태이고 그 마지막 마무리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우리는 세상 안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즉, 악한 이들은 선한 이들을 괴롭히면서도 끊임없이 회개의 초대를 받고, 반대로 선한 이들은 악한 이들에게 시달려 유혹에 빠지고 악에 물들 위험성 속에서 자신의 선을 가꾸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인내는 참으로 중요한 가치입니다. 섣부른 판단과 격분을 가라앉히는 데에 훌륭한 도움을 주는 가치입니다. 혼란스러워 보이는 가치들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인내를 가지고 꾸준히 선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사탄과 수하들은 자신들이 속한 곳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고 하느님의 자녀들이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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