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 - 타오르는 떨기
불에 타지만 타서 없어지지 않는 떨기는 나약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뜨거운 열정을 품고 있고 그 열정으로도 타서 사라지지 않는 신비로움을 드러냅니다. 때로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신앙의 열정을 품고 있는 사람을 보면, 저 정도로 무언가를 하면 분명히 다른 이 같으면 이미 그 열정이 타서 포기해 버릴 것 같은데 그러지 않고 끊임없이 신앙의 열정을 불태우는 사람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다른 이들에게 하느님의 존재를 드러내는 수단이 됩니다. 인간의 능력은 분명히 한계가 있고 어느 정도 소진되고 나면 없어져 버리고 말지만 하느님의 열정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타오르게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하느님의 현존의 표지가 됩니다.
회개 - 거룩한 곳과 신발
거룩함은 세속과 구분되어야 합니다. 세속의 것을 그대로 들고 거룩함으로 들어설 수 없습니다. 하다못해 세속의 먼지가 잔뜩 묻은 신발이라도 벗어야 합니다. 그 상징적인 표징으로 우리는 세례를 받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서 세상을 끊어 버리겠다고 고백합니다. 그것이 회개의 표징이 되는 것이고 신발을 벗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말로만 그렇게 할 뿐 실천하지 않는 이들이 많습니다.
배움 -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의 하느님
모세는 자신의 조상들이 어떤 존재인지 압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누구이며 어떤 믿음의 삶을 거쳐왔는지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배움은 예비자 교육 때에 이어 일상의 영역 속에서도 꾸준히 이어집니다.
두려움 - 얼굴을 가리다
모세는 하느님을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정반대로 하느님을 무시하고 세상의 어떤 요소들을 두려워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의 힘과 권력 앞에 우리를 조심스럽게 내보이면서 정작 하느님 앞에는 기고만장한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살지도 알지 못하면서 스스로 인생의 계획을 짜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이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러 뉴스를 통해서 보고 있으면서도 전혀 배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분은 육체의 파멸과 동시에 영혼을 멸망의 구렁텅이에 넣을 수 있는 분입니다. 바로 하느님을 올바로 두려워해야 합니다. 모세는 그 하느님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파견 - 너를 보낸다
하느님은 공연히 모세를 부른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거룩한 뜻이 있고 그 뜻을 이행할 목적으로 모세를 불렀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은 공연히 세상에서 잘 지내던 우리를 심심해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신앙에 다가오게 된 것은 무언가 우리를 통해서 당신이 뜻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파견이라는 거룩한 명령을 받는 이들입니다. 하느님의 존엄함을 아는 이는 이 고귀한 사명을 올바로 받아들이고 실천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세상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을 더 소중히 여기고 그 사명을 수행하면서 하느님의 명령은 무시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약속 -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최고의 것은 당신 자신입니다. 우리는 신앙을 통해서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특권을 얻습니다. 사실 하느님을 가진 이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다고 해도 하느님을 가지지 못한 영혼은 결국은 다 빼앗겨 버릴 것을 일시적으로 손에 쥐고 있는 가련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하느님은 당신을 믿는 이들과 함께 계실 것이고 그들을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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