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손에 물건을 쥘 수 있듯이, 또 감성에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고, 이성에 지식을 수용할 수 있듯이 우리의 영혼에는 '영적인 것'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영혼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은 사실 다양한데 여러가지 덕이 있을 수 있고(인내, 겸손, 온유, 친절, 선행, 선의, 호의, 진실 등) 또 정반대로 여러가지 악덕이 있을 수 있습니다(분노, 교만, 격분, 악의, 거짓 등). 또 우리 고유의 영혼이 아닌 다른 영의 영향력을 수용할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다양한 '더러운 영'의 활동을 언급하고 있고 또 '성령'의 활동도 언급합니다.
사실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에 우리는 성령을 함께 받습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우리의 자유로운 의지적 수용과 더불어(아이들은 부모나 후견인의 대리인을 통해서 그 약속을 대신 받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성령에 대해서 활짝 열린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신자가 되는 사람이면 누구나 성령의 내재적 활동을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성령의 활동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바로 로마서의 언급을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 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때로 우리는 종종 혼동을 일으키곤 합니다. 우리가 선한 사람인지 아니면 악한 사람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경우에는 서로 반대되는 자기 인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악인은 거꾸로 스스로를 선한 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고 반대로 선한 이들은 스스로를 너무나 비천하고 모자란 악을 자꾸 저지르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영적 지도자는 식별을 잘 해 주어야 합니다. 무엇이 진실한 선의 방향이고 무엇이 위선인지를 잘 밝혀 주어야 합니다. 또 무엇이 정말 악에서 기인하는 것이고 또 어떤 것은 약함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도 잘 알려 주어야 합니다. 어린 아이가 쓰러지는 것이 악은 아닙니다. 그건 도와 주어야 할 일이지요. 반대로 튼튼한 두 다리를 지닌 성인이 일부러 핑계를 대면서 쓰러지는 것은 약함이 아닙니다. 그건 약함을 핑계로 한 악함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런 인간적 식별을 넘어서서 하느님은 이미 우리를 알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영혼 가장 깊은 곳의 진정한 의도를 잘 간파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의인은 언제나 힘을 내어 걸어가도록 도움의 손길을 주시고 악인은 스스로의 어두움을 깨닫고 뉘우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신앙 생활을 하면서 이런 저런 기도를 열심히 바치면서 도무지 어떤 기도가 좋은 것일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도해야 할런지 모르는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에는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혼란스러운 기도를 하기 위해서 애쓰지 말고 오히려 천진한 어린이처럼 처신하시기를 바랍니다. 아이가 부모에게 어떤 선물을 주느냐 하는 것은 그 선물 자체의 외적 가치에 달린 것이 아니라 아이의 고운 마음에 달린 것입니다. 아이가 고사리손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면 그것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좀 멋져 보여도 혹은 다른 아이들의 것에 비해서 좀 모자라 보여도 부모에게는 모두 소중한 작품이 됩니다. 우리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보다 성령께서는 몸소 말로 다 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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