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누군가를 대하는 태도는 그 사람 자체에서 나온다기보다 우리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교황님은 우리에게 있어 더할나위 없이 소중한 분이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별 관심없는 늙은 사람일 뿐이고 심할 때는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대상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서 그 가치가 결정되고 또 우리가 설정한 가치에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통해서 이득을 얻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가장 귀한 종류의 포도주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그 포도주를 단번에 알아볼 것이고 그 포도주를 대접 받았을 때에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누릴 수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포도주의 가치를 전혀 모르는 채로 값비싼 포도주를 대접받은 사람은 그냥 소주를 먹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면서 그 귀한 포도주를 의미없이 마셔버릴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거룩함은 그것을 알아보는 이에게는 소중한 보물이 됩니다. 오늘 1독서는 그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수넴의 여인은 예언자의 가치를 알아보고 그를 극진히 대접합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상상도 못한 선물을 얻게 됩니다. 또한 2독서의 바오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에 대해서 설파합니다. 그분을 위해서는 우리의 생명을 다 던져도 남는 장사라고 이야기를 전합니다.
오늘 복음은 그것을 보다 심화 시킵니다. 그리고 심지어 거룩함에 대해서 알아보는 단계에 따라서 그것을 얻어내는 깊이도 달라진다고 이야기합니다.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일까요? 단순히 위대한 사람이라면 우리가 다른 여느 위대한 사람에게서 느끼는 것을 그에게서 느낄 뿐입니다. 하지만 그분이 진정으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분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우리는 구원자이신 분께 우리의 구원을 의탁할 것이고 그분은 기꺼이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그분의 사도들에 대해서도 달리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사제들은 왜 사제일까요? 물론 개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사제들은 자신의 의지로 사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부르심에 응답한 이들입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은 단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이어집니다. 나날이 세속의 한가운데에 살면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부르심에 성실히 응답해 나가야 합니다.
사심없는 마음으로 사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제가 훗날 받게 될 영광의 상급을 나누어 받게 될 것입니다. 물 한 잔이라도 그 상급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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