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고픈 사람들은 빵을 찾습니다. 그 빵은 그들의 안락한 생활을 보장해 주는 요소들입니다. 더 많은 재화, 더 많은 명예, 더 많은 권력과 같은 요소들입니다. 사람들이 찾는 것은 빵이고, 그래서 자신들 앞에 있는 구세주, 이미 그들에게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충분히 충족시켜 준 구세주에게도 그 빵을 더 내어 달라고 요구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이 곧 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빵에로 다가와서 믿으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몸에게 유익함을 주는 빵은 입으로 받아 삼키지만 하느님의 생명의 빵은 구체적인 실천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실망하고 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주시려는 빵이 그들에게 즉각적인 즐거움과 삶의 안정을 주기는 커녕 도리어 십자가로 느껴지고 부담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빵을 구체적으로 믿고 받아들이려면 그분이 살아가신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빵을 거부하고 맙니다.
오늘날에도 그 빵은 여전히 우리 앞에 생생히 살아 있습니다. 원하는 이는 누구나 다가가서 믿으며 그 빵을 먹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생명의 빵을 원하고 그 생명의 빵이 우리에게 인도하는 십자가를 받아들이기보다 진짜 빵만을 찾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 안락하고 더 편안한 생활을 추구하다보니 결국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맙니다. 하지만 그들의 안락함과 편안함은 그들의 육신과 함께 썩어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요한 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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