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모르던 어떤 부자가 한 상에 100만원짜리 식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밥을 먹는 내내 옆에 종업원이 와서 무릎을 꿇고 접대를 하고 혹시 뭐가 불편하지는 않은지 더 가져와야 하는 것은 없는지를 묻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나오는 걸 다 먹고 나니 배가 찢어질 듯 아프기까지 합니다. 이런 자리를 우리는 ‘가시방석’이라고 부릅니다.
아름다운 식사의 자리는 외적 화려함에 달린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함께 하는 이들과의 관계의 문제입니다. 서로를 신뢰하고 존중하는 사이라면 설령 음식이 치킨 하나 뿐이라고 할지라도 그 자리는 편안하고 푸근하게 마련입니다.
남미에서 반미사를 드리고 미사를 마치면 그 미사를 위해 자리를 마련한 집에서 소박한 식사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거기 모인 모든 가난한 참석자들이 다 똑같은 음식을 받아 먹습니다. 그리고 그 식사 자리는 유쾌하고 재미납니다. 아이들은 나와 제 부모 사이를 오가며 장난을 치고 어머니들은 제 앞에서 주님의 기도를 바치라며 아이들을 부추기기도 하고 아이들은 자랑스럽게 자신이 외운 주님의 기도를 옹알거리며 바칩니다. 그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식사의 극치라고 할 수 있지요.
우리가 세상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방식을 달리해야 합니다. 유명 백화점의 옷가게를 아무리 둘러본다 하더라도 거기에서 찾기 힘든 것을 우리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찾아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서 해진 옷을 죄송스러워 할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해진 영혼을 죄송스러워 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옷매무새를 고칠 줄 알면서 정작 영혼을 돌볼 줄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니 엉뚱한 일에 신경을 쓰느라 정작 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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