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소 안에서 마주하는 거의 모든 문제는 ‘관계’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만큼 관계가 소중하고 그 관계에서 문제가 일어난다는 말이기도 하겠지요. 이게 어떤 물건이라면 절대로 그 물건과의 관계를 가지고 오지는 않습니다. 물건은 필요할 때에는 쓰다가 필요가 없으면 버리면 그만이니까요. 하지만 인간관계는 특히나 가족관계를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관계가 문제가 됩니다.
일방적인 관계는 없습니다. 관계는 모두 상호적인 것입니다. 부모와도 배우자와도 자녀와도 친구와도 모두 상호적인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이게 내가 잘한다고 무조건 잘 되는 것도 아니고 또 상대가 잘한다고 그대로 잘 되어 가는 것도 아닙니다. 관계는 상호적으로 신경써야 하고 가꾸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계약’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모든 관계 사이에 계약을 끼워두고 그 계약이 지켜지는 동안에는 관계가 유지되다가 계약이 깨어지고 나면 관계가 파괴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그들이 근간으로 삼는 계약관계는 이해관계에서 시작되고 그 이해관계를 가늠하는 핵심은 바로 나 자신의 이익입니다. 그래서 나에게 유익한가 아닌가, 나에게 필요한가 아닌가가 핵심이지요.
헌데 신앙인은 근본적으로 하느님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모든 다른 관계를 구축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상대와의 계약이 파기되더라도 하느님 때문에 다시 그 상대에게 다가서야 하는 이들입니다. 바로 이 점이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힘든 점이 되는 것입니다. 나에게 아무리 필요가 없고 쓸모없는 존재라 할지라도 하느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한 번 노력해야 합니다.
고해소 안에 들어오는 이들은 자신에게 피로감을 안겨주는 관계, 혹은 자신에게 손해를 끼치는 관계 때문에 힘들어서 다가옵니다. 고해사제는 이 관계를 잘 점검해서 다시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주고 그로 인해서 또다시 그들에게 피로감을 주거나 손해를 끼치는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쉬운 길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그냥 피곤한 관계는 정돈하고 없애 버리고 싶어하지요. 그래서 실제로 친구 관계는 그렇게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가족이라는 관계는 아무래도 하느님을 앞에 두고 뭔가 양심에 걸리는 게 있는 법이지요.
가족은 선택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족은 하느님으로부터 선물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배우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배우자를 우리가 선택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하느님으로부터 선물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에 대해서는 언제나 ‘회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하느님께서 가정 안에서 바라시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보람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용기를 잃지 말고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길을 걸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길은 좁고 험해서 좀처럼 다른 이들이 걸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그 십자가의 길의 끝에 영원한 생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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