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여러가지 종류의 신심활동을 접하게 됩니다. 꾸르실료, 레지오, 성령 세미나, 떼제 기도, ME모임 등등이 있지요. 그리고 그러한 활동에 몸을 담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활동에 익숙해지게 되지요. 하지만 단순히 익숙해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집착’이 생기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실천하고 살아야 하는 것은 신앙이지 특정한 신심이 아닙니다. 우리가 근본적인 신앙생활만 잘 실천할 수 있다면 사실 그 밖의 다른 것들은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몸을 따뜻하게 해 주는 옷을 입고 있다면 다른 장신구들은 달 수도 달지 않을 수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옷의 따뜻함이 아니라 외적인 장신구의 중요성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때로는 엉뚱한 일이 벌어집니다. 몸은 추위에 덜덜 떨고 있는데 아름다운 장신구를 찾겠다며 몸을 혹사시키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지요.
교회는 근본적으로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올바로 하게끔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헌데 우리가 지나친 주변 활동에 집착하다 보면 우리는 그러한 특정한 신심을 위해서 공동체 전체의 안녕을 무시하게 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사람은 저마다 취향이 다르고 저마다 가진 재주가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신심 활동이라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우리가 신앙에 올바르게 이르기 위해서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요소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저마다의 환경과 현실, 그리고 저마다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서 합당한 활동을 고를 수 있습니다.
특히나 오늘날처럼 직업이 다양한 가운데 주기적인 모임을 전제로 하는 특정 신심은 교대 근무를 하는 이들이나 근무 시간이 일정치 않은 이들에게는 상당한 장애를 지니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모든 이들이 신앙에 다가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소외된 이들에게 다가가고 싶어하는 주님의 뜻을 가로막은 채, 인간이 만들어 낸 특정한 그룹의 부흥을 위해서 헌신할 수도 있습니다. 이건 뭐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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