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요나서를 읽으면서 요나의 마음에 동감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요나를 참으로 불쌍한 사람으로 봅니다. 하지만 요나야말로 가장 성공한 예언자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사명의 목표를 최고로 달성했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는 왜 존재할까요? 단지 사람들을 성가시고 귀찮게 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일까요? 변하지도 않는 그들에게 다가서서 양심의 가책을 주고 돌직구를 던지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이 바로 사람들이 예언자에게 느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는 짐을 지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반대로 짐을 덜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예언자는 그들이 받게 될 징벌을 피하게 도와주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 영적 치유의 과정은 사람들의 반발을 사게 마련이고 그래서 예언자는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이들입니다. 예언자도 인간인지라 짜증도 나고 귀찮기도 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기도 한 것입니다. 그 점에서 요나는 솔직했지요.
하지만 말씀은 자신의 사명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예언자로 선택된 이들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벗어나서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예언자를 사랑하셔서 그를 재난에서 구해 내시고 그에게 힘을 북돋아 주시고 그에게 가르침을 주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언자는 자신이 사명을 이룰 곳에 도달하고 마는 것이지요.
헌데 요나 예언자는 자신이 사명을 이룰 곳, 즉 통상적이라면 괴롭힘을 당하고 죽어 마땅한 곳에서 기적과 같은 일을 체험한 셈입니다. 즉 그 곳의 사람들이 요나 예언자의 말을 듣고 모두 회개해 버린 것이지요. 요나 예언자로서는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충분히 반발을 예상하고 결국 그 자리에 가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했는데 사람들이 그 말씀에 순종해 버리고 말았으니까요.
소양이 부족한 요나는 하느님의 이런 처신에 투덜거리지만 하느님은 마지막까지 그에게 가르침을 주십니다. 즉 하느님은 구하시고 살리시는 분이라는 것이지요. 하느님은 생명을 사랑하는 분이십니다.
요나는 자신이 뿌린 씨가 추수되는 것까지 지켜본 예언자였습니다. 그러니 그는 가장 성공한 예언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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