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마태 23,5)
우리는 사람들로부터 영예를 얻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사람들의 애정을 추구할 때에 우리는 비참해집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절대로 제대로 된 찬사를 던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눈으로 드러날 수 있는 위대한 일은 잠깐의 감탄을 자아낼 뿐입니다. 누가 히말라야 산에 올라갔다고 해서 우리가 그 일을 늘 되새기면서 꾸준히 감탄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만일 다른 사람이 다른 기록을 세워 버린다면 앞서 그것을 달성한 사람은 잊혀져 버리고 말지요.
사람들에게 얻는 찬사는 이처럼 거품과도 같은 것입니다. 잠시 끓어 올랐다가 이내 사라져 버리고 말지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의 인정을 바라는 이들의 내면도 공허가 가득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아름다운 얼굴을 지닌들, 세상에서 아무리 뛰어난 재주를 지닌들 그것을 가지고 영원을 위한 일에 헌신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허무한’ 존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에게 보이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숨은 일도 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면에 진정으로 빛나는 보석을 갖추는 것이 더 필요합니다. 외적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옷보다는 내면으로 갖추는 거룩함이 더 낫습니다. 외적으로 드러나는 수많은 활동보다는 겸손하고 인내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여기에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외적으로 활동하지 마라’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외적 활동은 ‘내적인 바탕’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외적인 활동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내적으로 준비되어 있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내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외적인 일은 아무리 뛰어나고 아무리 드러나는 일이라고 해도 별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수박이 아무리 화려해도 결국은 속에 익은 것을 제대로 먹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썩은 속을 아무리 화려한 외면으로 치장한 들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근본은 짠 맛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짠 맛은 우리가 겸손하고 다른 이들을 섬기려고 노력하는 만큼 더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외적인 화려함과 드높은 자리에 마음을 쓰는 만큼 우리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어져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이들이 되고 말 것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