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걸음의 헛된 걸음을 걷는 것보다 한 걸음 바른 방향으로 걷는 것이 낫습니다. 물론 혹자는 천 걸음을 걷는 동안 다리에 힘이 붙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요. 하지만 한 걸음을 제대로 걸으려고 노력하는 동안에도 우리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합당한 힘이 길러지게 마련입니다. 천 걸음을 걷고 어둠의 길에 접어드느니 한 걸음의 빛의 길이 더 나은 법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분별이 필요합니다. 내가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는지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올바른 분별 안에서 올바른 결정이 내려지게 되는 것이지요. 이 분별의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나중에는 엉뚱한 길을 걷게 됩니다.
분별을 하기 위해서는 올바로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스승을 두고 올바로 배우는 일은 분별을 위해서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엇나갑니다. 그 이유는, 다른 스승을 두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의 판단을 믿기 때문이지요. 마치 베드로가 스승에게 초막 셋을 짓겠다고 한 것처럼 자기 자신의 분별을 너무나 과신하는 것입니다. 자신 안에 어떤 어두움이 끼어들어 있는지, 어떤 헛된 생각이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채로 자신의 판단이 분명하고 뚜렷하다고 과신하는 탓입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엇나갑니다.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걸으면서 실제로는 하느님에게서 상당히 멀어져 있는 모양새가 됩니다. 그리고 예언자의 목소리는 허공에 메아리칠 뿐입니다. 아무도 받아들이는 이들이 없으니까요.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은 자신의 사명을 이루지 않고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허공을 떠돌던 그 목소리를 찾는 이들이 반드시 있을 것이고 그들은 그 목소리를 듣고 지혜를 찾아 여정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남방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온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였습니다.
그 날에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니고 있다고 믿어왔던 것들을 빼앗기게 될 것이고, 반대로 자격이 없다고 믿어왔던 이들이 하느님을 얻어 만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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