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마땅히 분노해야 한다”
이런 캐치프레이즈를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올바로 바라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지만 매순간 ‘분노’할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님도 ‘노기 띤 얼굴’로 상대자를 바라보신 적이 있지만 예수님의 의로운 분노가 우리에게 올바로 자리잡히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분별있게 ‘의분’을 느끼기에는 아직 많은 부분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분노는 감정을 증폭시키는 것이고 곧잘 오류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노하면서 올바른 분별력을 잃어버리기가 너무 쉽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역으로 분노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더 시급하고 절실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분노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원수인 악마가 가장 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으로 성급하게 화내지 마라. 화는 어리석은 자들의 품에 자리 잡는다. (코헬 7,9)
감독은 하느님의 관리인으로서 흠잡을 데가 없어야 합니다. 또한 거만하지 않고 쉽사리 화내지 않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티토 1,7)
나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이것을 알아 두십시오. 모든 사람이 듣기는 빨리 하되, 말하기는 더디 하고 분노하기도 더디 해야 합니다. (야고 1,19)
이처럼 성경 구절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화는 절대로 낼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화내는 것에는 상당한 절제와 인내가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우리에게 절대로 이런 절제와 인내를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자신이 목적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화내는’ 일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쉽게 화를 낼 수록 우리에게는 절제와 인내가 상실됩니다. 그리고 절제와 인내가 사라진 인간은 가장 조종하기 쉬운 인간이 됩니다. 텔레비전의 홈쇼핑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종류의 프로그램은 우리가 빨리 서두르도록 해서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구매하게끔 종용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가 조급하도록 최선의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지요.
섣불리 화내지 마십시오. 먼저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가장 화내야 할 분이 왜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지 잘 성찰해 보십시오. 그리고나서도 화를 내어야 하겠으면 화를 내십시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