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과목이 있으면 그것만 따로 교육을 시키는 곳을 ‘학원’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학원은 원래 기본 교육이 제대로 되면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 정상입니다. 하지만 기본 교육의 수준을 벗어나서 자녀들을 ‘특별히’ 더 잘 하게 만들어서 좋은 대학에 넣고 싶은 부모들의 욕심이 더해지는 등 여러가지 요인으로 ‘학원’이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학원이 없는 학교생활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가 되고 말았습니다.
원래 미사는 하나입니다. 어린이 미사, 청소년 미사, 청년 미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미사는 하나의 동일한 미사일 뿐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거룩한 예식이고 기쁨과 감사의 축제의 자리입니다. 그래서 어느 미사를 가던지 미사는 모두 똑같고 그 안에서 하느님을 향한 나의 사랑을 드릴 수 있습니다. 헌데 어느날에서부터인가 특정 대상을 위한 미사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미사는 한 측의 미사와 다른 측의 미사가 너무도 달라 보여서 서로 융화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특별히 ‘어린이 미사’라는 것이 그 특이성을 한층 더해가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한 날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드릴 수 있도록 허락된 어린이 예식서가 보편화되고 일상화되면서 그 ‘어린이 미사’가 전부인 양 치부되게 되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특화’된 미사를 선사하겠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역으로 어린이들이 소위 ‘어른 미사’에 적응하지 못하는 역효과를 내게 되었습니다.
미사가 갈라지면서 당연히 가족들도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주일이면 가족들이 한데 모여 미사에 가던 풍경이 변하게 되었고 어린이는 어린이 미사에, 청소년은 청소년 미사에, 청년은 청년 미사에, 어른들은 교중미사에 ‘가야만’ 하는 것처럼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이 오손도손 미사에 가려고 해도 제 또래의 미사가 아니면 이상하게 눈치가 보이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신앙 교육은 가정에서부터 이루어져야 정상입니다. 그리고 본당에서 이루어지는 교리교육은 ‘부가적’인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가정들은 ‘신앙의 양성소’로서의 역할에서 실패하고 있고 피치 못하게 자녀들을 성당 교리 교육 시스템에 맡기는 의존적인 구조가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성당에서 아무리 열심히 교리를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가정에 돌아와서 교리의 본질이 지속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법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자고 아무리 가르쳐도 정작 집에서는 마몬을 섬기고 있다면 과연 어떤 가르침이 자녀들에게 힘있게 다가올 것 같습니까?
가정이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아이들의 문제는 사실 어른들의 문제입니다. 어른들이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무엇이 참된 신앙인지, 그 신앙을 키우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지를 알아서 가정에서부터 신앙을 시작해 나가야 합니다. 단순히 미사 시간을 바꾸거나 어떤 종류의 제도를 바꾼다고 해서 달라질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정신을 차리고 참된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 어떤 가정이라도 회개를 시작하고 참된 신앙을 가정 안에 불러 들인다면 그 가정은 성화되고 변화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주변이 바뀌지 않는다고 투덜거릴 이유가 없습니다. 신앙의 맛을 보게 된 아빠가 굳은 결심으로 가족을 신앙의 길로 이끈다면 그 가족은 반드시 성화될 것입니다. 신앙에 눈 뜬 엄마가 가정의 중심에서 신앙을 전파한다면 그 가족은 반드시 성화될 것입니다.
외적 조건의 변화를 통해서 내적 조건이 바뀌길 기대하지 맙시다. 내 주변에 예언자가 산다고 해도 정작 내가 그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아무 짝에도 소용 없는 법입니다. 변화의 핵심은 우리 자신들에게 있습니다. 투덜거리기만 하는 사람은 내내 투덜거리기만 하고 정작 변화할 수 있는 여지에 전혀 손을 대지 않습니다. 우리는 변화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회개’해야 합니다. 바로 그 때에 모든 것이 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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