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올바로 읽으려면 당연히 그것을 쓴 사람의 의중을 올바로 분별해서 읽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수천년 전에 죽은 이들에게 가서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성경 저자들이 ‘성령의 영감’에 의해서 성경을 쓰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따라서 성경을 읽을 때에는 바로 ‘성령’과 함께 읽어야 한다는 것이 당연한 귀결이 됩니다.
성경은 언제나 출발점을 하느님에게 두어야 합니다. 가장 완전하신 분, 오류가 없으신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그 출발점을 찾아서 읽어 나가야 하고 의문나는 점이 있을 때에는 가장 완전하시고 사랑 그 자체이신 하느님에게서 출발점을 삼아서 그 의문에 대한 해소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크게 어긋남 없이 성경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여러분의 지혜가 열리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예컨대 ‘질투하는 하느님’(탈출 20,5)에 대해서 읽으면 우리는 곧잘 그 출발점을 우리 자신에게 둡니다. 헌데 우리는 질투라는 것을 굉장히 어두운 방향으로 이끌어 가기 때문에 ‘질투’라는 단어 자체를 어두운 것으로 생각하고 따라서 ‘질투하는 하느님’을 해석하면서 하느님 자체를 추한 행위를 하는 분으로 간주해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오류에 빠지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오류의 근본에는 ‘나 자신의 합리성’에 대한 굳은 신뢰가 바탕이 되어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대로 출발점을 가장 완전하시고 거룩하시고 선하신 하느님에게서 시작한다면 이 ‘질투하는 하느님’에 대한 부분을 전혀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게 됩니다. 질투라는 단어의 올바른 이해와 더불어서 하느님의 질투 자체가 당위성을 지닐 수 있는 방향으로 해석하게 되지요. 원래 하느님의 몫이었던 당신 백성에 대해서 하느님은 질투를 할 수 있고 당신의 질투는 거룩하고 선함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출발점이 완전히 다르기에 전혀 다른 이해가 도출되게 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해석하지만 성경은 성령 안에서 이루어질 때에 합당하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학위가 높다고 해서, 고위직에 종사하고 있다고 해서 성경이 더 잘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일자 무식한 농부라도 성령 안에 머무를 때에 자신이 들은 성경 구절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면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성경을 집어 드셔야 합니다. 그리고 읽어야 합니다. 다만 여러분이 이해한 것들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면서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많이 읽는다고, 필사를 더 자주 한다고 절로 이해되는 것이기보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에 성경 안에 숨어 있던 진리가 나에게 더 환히 드러나게 됩니다.
십자가를 져 보지 않고는 십자가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십자가를 구체적으로 지게 될 때에, 즉 자신은 선을 위해서 일하는데 나에게 시련과 고난이 다가오게 될 때에 비로소 예수님이 지고 가신 십자가를 이해하게 되고 그분을 더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대한 사전 지식이 부족하다고 겁내지 마십시오. 학식은 많지만 교만한 학자보다는 겸손하면서도 열린 마음을 지닌 순박한 이가 성경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양들은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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