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의 진노는 잠시뿐이나, 그분의 호의는 한평생이니, 울음으로 한밤을 지새워도, 기쁨으로 아침을 맞이하리라. (시편 30,6)
하느님은 진노하시는 분이십니다. 즉 인간의 악행을 마냥 가만히 내버려두지는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정의를 시험하는 악인들은 언젠가는 그분의 진노를 입게 됩니다. 하지만 그 진노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꾸준한 자비가 존재하고, 또한 언제라도 인간이 뉘우침을 보이기 시작할 때에 그분의 진노는 순식간에 사그라들고 자비의 움직임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인간의 알량한 자존심은 자신이 도대체 누구 앞에 대적하는지를 깨닫지 못하게 눈을 가려 버립니다. 그래서 자비를 갈구하기보다는 도리어 주님의 진노를 앞당기게 되지요.
그리고 그렇게 이루어지는 진노는 당연히 주변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한 사람에게 이루어진 주님의 진노로 인해서 다른 이들이 깨닫게 되기를 바라시는 뜻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모습 안에서 하느님을 다시 찾는 이들에게는 언제나 아침이 새로이 시작됩니다.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은 언제 하더라도 얼마나 하더라도 부족한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체험해 본 결과로는 사람들은 그 말을 질려하고 예전의 이집트에서 먹던 맛난 음식들을 그리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날더러 수도자가 되란 말인가?”
천만에요, 그렇게 되지를 바라지도 않고 또 그런 질문을 하는 당신은 그렇게 될 자격도 없습니다. 하지만 때가 이르면 동쪽과 서쪽에서 사람들이 모여 와서 지금의 소위 ‘위선적 거룩함’에 빠져 있는 이들은 그 근처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거룩한 이들이 모여들게 될 것입니다. 질문은 이렇게 바뀌었어야 합니다.
“저는 지금은 많은 것이 부족하지만 이런 제가 어떻게 하면 하느님 앞에 나아갈 수 있을까요?”
마음을 다해서 이런 의문을 가지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들에게는 기쁨으로 맞이하는 아침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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