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은 나라를 지켜야 하고 의사는 생명을 살려야 합니다. 그것이 그들의 의무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월급을 받고 그들은 본인의 사명을 해야 합니다.
그들의 월급이 끊길 때 그들의 의무도 더는 기대하지 못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자신에게 그 어떤 이득이 돌아오지 않는데도 자신이 해야 할 바를 수행하는 이들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이 의무와 사랑의 경계선이 될 수 있습니다. 그에게 충분한 값을 치르고 있으니 그가 하는 일은 그가 아무리 성심껏 한다 하더라도 결국 그의 '의무'에 종속된 일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그에게 합당한 것이 돌아가지 않는데도 그가 성실하게 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그의 자발적인 사랑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하느님은 피조물을 성실히 돌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창조에 따른 자연스러운 의무이지요. 그래서 자연물은 하느님의 '창조질서'에 따라서 순환하며 살아갑니다. 하느님의 돌봄이 모든 곳에 미치고 있다는 증거이지요.
하지만 '구원'은 하느님의 '의무'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창조하셨으니 무조건 구원해야 하는 영역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하시는 영역에 속한 것입니다.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치 구원하시는 일이 우리가 마땅히 요구하고 당신이 반드시 해 내야만 하는 일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에 합당하지 않은 데도 막연히 구원을 기대하는 엉뚱한 사람들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하느님은 결국 나를 구원하셔야 할 거야.'라는 막연한 착각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가 하는 일이 '의무'였는지 '사랑'이었는지는 그가 일을 멈출 때에 분명히 드러나게 됩니다. 그가 해 온 일이 의무였던 사람이라면 우리는 그에게 강하게 항의하며 하던 일을 계속하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해 온 것이 순전히 그가 베풀어 온 사랑이라면 우리는 그에게 무언가를 해 달라고 요구할 근거가 없게 됩니다. 바로 이 차이로 그의 일의 가치가 드러나게 됩니다. 훗날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베푸셨던 '은총'이 그치게 될 때에 과연 우리는 그것을 더 요구할 수 있는 처지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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