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서로 주고받는 것은 '음성'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내포된 뜻이 '의미'입니다. 성경에서 '말씀'이라는 말이 나올 때에는 이 '의미'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바람직합니다. 음성이 없어도 행동으로 말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표정이나 태도를 통해서도 말이 전달됩니다. 주님은 그렇게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주님이 곧 하느님의 말씀이셨습니다.
음성으로 이루어진 말은 속이기 쉽습니다. 속의 뜻을 숨기고 겉으로 착한 척을 할 수도 있고 속의 좋은 뜻이 겉으로 곡해당할 수도 있습니다. 유투브를 하고 난 이후로 댓글로 성질내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거의 대부분은 제가 영상 안에서 전하는 의미를 파악한 게 아니라 말마디 하나에 거슬려서 응답하는 사람들입니다.
일상 안에서도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납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불필요한 말은 삼가하려고 합니다. 말을 적게 해서 문제가 생긴 적은 없습니다. 많은 말을 했을 때에 별 일이 없으면 다행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지 많은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차이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한 사람의 삶은 그 자체로 그가 드러내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열심히 사는데 무의미한 사람이 있고, 드러나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는 데에도 그 안에 의미를 풍부히 담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산책을 하며 자연 안에서 말씀을 읽어내는 사람이 있고 수많은 정보에 둘러싸여 자신을 상실해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꺼내는 것이 우리의 관심사입니다. 우리가 자주 하는 생각이 말로 드러납니다. 말씀 안에 살아가며 복음을 전하겠다는 의지가 항상 삶으로 드러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입만 열면 자기 자랑과 돈걱정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이 그의 본질인 셈입니다.
말씀이 언제나 환영받을 리가 없습니다. 허무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의미를 두려워합니다. 의미를 통해서 자신의 허구가 드러나기 때문이지요. 다른 표현으로 거짓에 물들어 있는 사람은 진리를 싫어합니다. 하기 싫은 일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초대할 수 있을 뿐입니다. 군대를 억지로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나의 이웃을 지키겠다는 마음을 만들어 넣을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는 공허를 품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양파껍질 같은 외적 틀을 만들어 살아갑니다. 이것 저것 허황된 생각으로 자신을 꽁꽁 싸매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벗겨보면 아무것도 없지만 그것을 벗겨내려면 많은 노력이,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의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이 그토록 소중히 여겨오던 것이 텅 빈 것이라는 것이 밝혀질 때에 그들의 울분이 예상됩니다. 그렇게 소중히 여겨왔는데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니 얼마나 절망스러울까요? 그래서 의미를 찾도록 초대하고자 하지만 지금의 단단한 그들의 마음은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 지상의 껍질이 벗겨지는 날 허무로 돌아갈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면 '말씀'을 채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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