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잤니? 우리 공주님."
인자는 자신의 피로도 여전히 씻어내지 못했지만 딸의 방으로 가서 딸을 조심스레 잠에서 깨운다. 출근하기 전에 유일하게 딸과 가질 수 있는 오붓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엄마, 나 꿈을 꿨어요. 근데 너무 무서웠어요. 한 아이가 나왔는데, 날더러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저런, 그래도 다행이구나. 꿈은 그저 꿈일 뿐이니까. 엄마 조금 바쁘니까 어서 일어나 아침 먹자꾸나."
"네, 엄마."
인자는 다시 부엌으로 가서 계란프라이를 시작한다. 상 위에는 이미 밥과 국, 그리고 냉장고에서 꺼낸 반찬통들이 놓여 있다.
"아야!"
화장실에서 딸이 아파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인자는 즉시 달려간다.
"산아야 무슨 일이니?"
"엄마, 칫솔 집으려다가 새끼 손가락을 베었어요."
화장실 선반대 모서리가 조금 깨진 적이 있었는데 아이가 손을 뻗다가 손가락을 조금 벤 모양이다.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한다. 인자는 딸아이의 다친 손가락을 보면서 마음이 찡하게 아픈 걸 느낀다.
"엄마가 고친다는 게 매번 정신이 없구나. 미안해. 일단 소독하고 약 바르자꾸나."
인자는 선반 높은 곳에 있는 소독약과 작은 밴드를 꺼낸다. 그리고 딸아이의 손가락을 씻고 소독하고 밴드를 감아준다. 행여 딸아이가 조금이라도 더 아플까봐 동작 하나하나 조심스레 한다.
"어때 괜찮아?"
"네, 엄마. 고마워요."
인자는 딸을 데리고 식탁으로 간다.
"오늘은 엄마가 좀 일찍 출근해야 해서 먼저 나가볼께. 산아는 아침 먹고 조금만 기다리고 있으면 이모가 데리러 올거야. 알았지?"
"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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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인자의 직장이다. 인자는 동네에서 꽤 인지도가 있는 산부인과를 운영하고 있다. 아직은 진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데스크에서 넘어온 전문 상담 전화를 처리하는 중이다.
"네... 네... 7주부터 24주까지 가격대가 60만 원부터 시작해 주 수마다 10만 원 차이가 나구요, 최대 300만 원 수준까지라고 생각하시면 되어요. 아직 완전 합법화된 것은 아니지만, 정부 발표대로라면 24주가 이내 여성은 임신중절은 가능하다고 하니 차라리 안정적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낫죠. 이제 법적으로도 불법은 아니니까 그 점은 걱정 않으셔도 되요."
'똑, 똑'
데스크 간호사가 문을 빼꼼이 연다.
"과장님, 이제 시작하셔야 할 시간..."
간호사는 인자가 아직 전화 중이라는 것을 보고는 목소리를 낮춘다. 인자는 전화를 황급히 마무리한다.
"네, 충분히 생각해 보시고 연락주세요. 그냥 종양 하나 제거한다고 편안하게 생각하세요. 하지만 너무 늦지 않게 결정하시는 게 나으실거에요. 빨리 없애 버릴수록 환자분 몸에 더 나으니까요. 벌써 18주나 되셨다니 지금 당장 결정해도 사실 조금 늦을 수도 있겠네요."
"과장님 준비 다 되어 있습니다."
"네, 갈께요."
복장을 준비하고 준비된 수술실로 황급히 들어온 인자는 환자에게 형식적인 인사를 하고 수술을 준비한다. 오늘 환자는 임신 13주에 접어든 환자이다. 두어 주만 일찍 왔더라도 14인치짜리 프렌치 흡입 카테터로 빨아당겨서 끝내버릴 수 있었을텐데 오늘은 조금은 시간이 걸릴 예정이다. 태아는 이미 형성된 몸체를 가지고 있었다. 인자는 먼저 아기를 감싼 양수를 빼낸다. 그리고 차가운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클램프를 집어든다. 샐러드집게처럼 생겼는데 끝 사이가 충분히 넓고 날카로운 이빨 형태의 돌기가 있어서 뭐든 잡히는 걸 잡아당기기 좋다. 하지만 자궁 내를 바라볼 수 있는 수단은 없으니 온전히 자신의 손감각에 의존해야 한다. 기구를 집어 넣는다. 뭔가 두툼한 느낌이 느껴진다. 태아의 다리가 틀림없다. 인자는 주저없이 그것을 확 잡아당긴다. 역시, 다리가 하나 뽑혀져 나왔다. 인자는 그것을 옆에 놓여진 테이블 위의 스테인레스 접시에 조심히 올려둔다. 그리고 다시 기구를 집어넣는다. 두번째로 뜯겨져 나온 것은 팔이다. 다시 그것을 테이블 위에 둔다. 인자는 그렇게 비슷한 행위를 반복해서 척추, 내장, 심장, 폐 등을 차례로 꺼내기 시작한다. 이제 남은 것은 머리다. 아기의 머리통은 꽤나 커서 큰 자두만하다. 인자는 기구의 손맛으로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꽤나 큰 것이 걸려서 손바닥이 쫙 펴지기 때문이다. 힘을 주어 집게를 오므려 그것을 부술 때 흘러나오는 흰 액체로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 그건 그 아기의 뇌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수고 난뒤에는 두개골 조각을 하나하나씩 꺼내면 된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아기의 얼굴을 꺼내는 순간 그 얼굴이 나를 쳐다보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이런 일을 한두번 해 본 게 아닌 그녀에게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환자분, 다 끝나갑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인자는 주머니에 넣어 둔 휴대폰이 울리는 느낌을 받는다. 인자는 눈짓으로 간호사에게 뒷정리를 부탁하고 수술실을 빠져나온다.
손에 묻은 뇌와 피를 씻어내고 장갑을 벗고 수술복을 벗었다. 잰걸음으로 진료실로 들어선 인자는 전화를 꺼내들었다. 산아의 학교 선생님에게서 걸려온 부재중 전화였다. 인자는 통화 버튼을 누른다.
“여보세요.”
“아, 산아 어머님? 바쁘신데 귀찮게 해 드리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요.”
“걱정마세요. 산아일만큼 중요한 게 또 있겠어요.”
“다름이 아니라 오늘 미술시간에 ‘꿈’이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렸는데 산아 그림이 좀…”
“네? 그림이 어떻다는 거죠?”
“좀… 많이 어두워서요. 그래서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요.”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면서 꿈 이야기를 하긴 했어요. 그냥 꿈이라고 괜찮다고 하긴 했는데. 우리 산아가 뭘 그렸던가요?”
“온통 시커먼 배경에 작은 사람들이 우루루 둘러서 있는데 그 가운데 흰 가운을 입은 사람을 그렸더라구요. 가운데 있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엄마’라고 했어요. 주변에 둘러선 작은 사람은 누구냐고 물었더니 그건 자기도 모른다고 하네요. 헌데 그들이 모두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고 했어요. ‘오늘이 마지막’이라구요.”
“글쎄요. 저도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나저나 아침에 산아가 손을 좀 베었는데, 혹시 선생님 보셨나요?”
“아, 네, 그건 걱정마세요. 학교에서 밴드에 피가 배어나와서 양호실에 가서 산아가 좋아하는 캐릭터 밴드로 바꿔줬어요.”
“그랬군요. 생각보다 좀 깊이 베인 모양이네요. 신경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뭘요, 당연한 일이죠. 일단 제가 상의하고 싶었던 일은 여기까지에요. 오늘 집에 돌아가시면 산아 잘 살펴봐 주세요.”
“네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간호사가 다시 빼꼼이 문을 연다. 다음 환자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인자는 얼른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고 수술실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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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아이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 이튿날도 또 그 다음날도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13일이 흘렀다. 인자는 약 일주일간 미친듯이 아이를 찾기 위해서 애를 썼다. 그러나 그 어떤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일주일 후부터는 반쯤 정신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초점없는 시선으로 벽만 응시하고 있었다.
며칠 뒤에 강가에서 아이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경찰은 곤란한 표정으로 신원확인을 부탁 드린다면서 인자에게 연락을 해 왔다. 인자는 설마하는 심정으로 그곳에 갔다. 현장에는 얼굴이 덮여 있는 시신이 보였다. 어떤 극도로 미친 정신병자의 짓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이의 몸은 한눈에 보기에도 성한 곳이 없었다. 한쪽 팔과 다리는 마치 뜯겨져 나가기라도 한 듯이 너덜너덜해져 있었고 머리의 두개골은 으깨져 뇌가 다 빠져나와 있었다. 경찰이 다가와서 이야기를 했다.
“참 신기하지요. 이렇게 난도질을 당했는데도 얼굴이 아직 남아 있더라구요. 물론 물 속에 오래 잠겨 있어서 퉁퉁 불어서 알아보기는 쉽지 않으실 겁니다. 그래도 보시겠습니까?”
인자는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이 얼굴 부분의 천을 아래로 내린다. 그 얼굴은 눈을 반쯤 뜨고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사실 그 몸에는 옷조차 걸쳐 있지 않아서 신원을 알아볼 마땅한 수단이 없었다. 그러나 인자의 시선을 가로채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아직 덜렁거리며 달려있는 한쪽팔 끝, 손가락에 감겨 있는 캐릭터 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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