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의 가르침을 ‘새로운 소식’이라고 합니다. 왜냐면 이는 정말 전에 없던 새로운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새로움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왜냐하면 아직 아무도 포장지를 뜯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개월 전에 생산되었지만 이미 제품이 나올때 뜯어서 사용하는 연필보다는 2개월 전에 생산되었지만 아직 한 번도 쓰지 않은 연필이 당연히 ‘새 연필’입니다. 왜냐면 한 번도 쓰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마찬가지의 이유로 하늘나라의 가르침도 ‘새로운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모두들 듣긴 했지만 아무도 그것을 따라오지 않기 때문이지요. 알지만 실천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라’는 계명을 누가 모릅니까? 하지만 그 계명의 본의를 올바로 깨닫고 실천하려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하늘나라의 가르침은 여전히 잘 보관되어 있습니다.
반면, 옛 가르침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벌써 익숙해져 있고 익히 실천해 오고 있는 가르침이지요. 그것은 율법적인 사고, 세상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하는 가르침들입니다. 즉 어느 계명을 지키면 우리가 죄악을 피할 수 있고, 어느 좋다는 행위를 반복해서 하면 우리의 수준이 올라간다는 식이지요. 이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고스란히 실천하고 있으니 세상 안에서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되기 때문이지요.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고등학생 때에 하면 안되는 짓들이 있고, 좋다는 학원을 다녀야 대학에 올라가는 것과 같지요.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처세술’ 책들에 기술된 내용들은 모두 이런 우리의 욕구를 반영하고 드러내고 있지요.
사실 모두가 다 소중한 것입니다. 하느님은 필요없는 것을 인간에게 마련하시지는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이 둘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을 것입니다. 단순히 하늘나라의 열정적이고 순수한 가르침에만 치우치지도 않고 반대로 옛 것을 올바로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합당한 지침을 줄 수 있다면 참으로 좋겠지요. 그렇다면 이제는 이 구절의 의미를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마태 13,52)
‘사랑하라’는 계명을 누가 모릅니까? 하지만 그 계명의 본의를 올바로 깨닫고 실천하려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하늘나라의 가르침은 여전히 잘 보관되어 있습니다.
반면, 옛 가르침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벌써 익숙해져 있고 익히 실천해 오고 있는 가르침이지요. 그것은 율법적인 사고, 세상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하는 가르침들입니다. 즉 어느 계명을 지키면 우리가 죄악을 피할 수 있고, 어느 좋다는 행위를 반복해서 하면 우리의 수준이 올라간다는 식이지요. 이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고스란히 실천하고 있으니 세상 안에서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되기 때문이지요.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고등학생 때에 하면 안되는 짓들이 있고, 좋다는 학원을 다녀야 대학에 올라가는 것과 같지요.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처세술’ 책들에 기술된 내용들은 모두 이런 우리의 욕구를 반영하고 드러내고 있지요.
사실 모두가 다 소중한 것입니다. 하느님은 필요없는 것을 인간에게 마련하시지는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이 둘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을 것입니다. 단순히 하늘나라의 열정적이고 순수한 가르침에만 치우치지도 않고 반대로 옛 것을 올바로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합당한 지침을 줄 수 있다면 참으로 좋겠지요. 그렇다면 이제는 이 구절의 의미를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마태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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