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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과의 인터뷰 2

잘 지내셨습니까 주님

- 덕분에. 하하하.

그냥 하시는 말씀이지요?

- 아니야, 나를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은 나의 기쁨인걸? 내 이름을 전하고 사람들이 나에게 감사하게 하는 이들은 모두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야. 하지만 넌 조금 더 분발해야겠어.

네, 그렇게 하도록 노력하지요. 그럼 오늘 질문을 시작하겠습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의 영역 안에 있나요?

-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사실 창조된 모든 것은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긴 해. 하지만 단 하나 내가 엄청난 선물을 한 부분이 있지. 그건 바로 인간들이 지닌 ‘자유의지’라는 거야. 그것만은 내가 놓아두는 거야. 그것을 건드리면 내가 원래 목적한 ‘사랑’도 사라져 버리거든. 목각 인형을 떠올려봐. 그 인형은 자유의지가 없어 그저 내가 움직이려는 대로 움직이 뿐이야. 나는 그런 인간을 만든 게 아니야. 나는 ‘사랑할 수 있는’ 인간을 만들었어. 하지만 그 인간들 중에 첫 인간이 나를 ‘거역’하기 시작하면서 ‘사랑’이 들어차야 할 자리에 ‘죄’가 들어차 버린 거지. 내가 아들을 준비시킨 것도 마찬가지 이유야. 그렇게 돌아서버린 이들을 다시 끌어오기 위해서였지. 나는 어둠을 만든 적이 없어. 다만 엄청난 선물을 줬을 뿐이고 그 선물을 받은 이들이 그 선물을 이용해서 전혀 엉뚱한 것을 만들어 내었을 뿐이야. 그리고 나는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지.

지켜보신다는 것은 지켜 보시기만 하신다는 것인가요?

- 정말 그렇다고 생각해? 내가 가만히 팔짱을 끼고 앉아서 있었더라면 이미 이 세상은 멸망했을거야. 그리고 영원한 생명에 합당한 자격을 지닌 이들은 아마 하나도 없었을 지도 몰라. 나는 열심히 일하는 타입이야. 지금도 일하고 있지. 지금도 힘들어하고 고통받고 소외당한 이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일하고 있어. 물론 반대쪽의 케이스도 보살피고 있지. 지나치게 교만하거나 다른 이를 억압하거나 하는 경우도 그에 가장 적절한 것을 마련해 두고 있어.

그게 뭔가요?

- 왜 아는 걸 묻고 그래? 내가 아들을 통해서 다 말해 뒀잖아. 하늘나라에 대한 비유를 잘 읽어봐. 거기에는 하늘나라로 통칭되는 아름다움만 나오지 않아. 거기에는 밖으로 던져져 울며 이를 가는 이들도 등장하지. 모든 구도는 미리 마련되어 있어. 그 주인공이 되어 무대 위에 올라서고 그에 합당한 곳으로 가기를 결정하는 것은 너희들이라구. 내가 아니야. 하지만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모두 내 탓으로 돌리기 바쁘지. 내가 일을 하지 않는다나?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나? 뭐 그런 식으로 나를 무시하면서 말야. 하지만 나는 엄연히 존재하고 최선을 다해서 인간들을 돕고 있다구. 너희들이 미처 ‘이런 것까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세세한 수준까지 파악하고 있고 실행하고 있다구. 오죽하면 너희들의 머리칼 하나하나까지 다 세는 줄 아니?

그렇군요.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자격 요건 같은 게 있나요?

- 너희들의 자유의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관건이 달려 있어. 습관적으로 하는 모든 신앙 행위들은 실제로는 거의 소용이 없는 짓들이야. 차라리 주님의 기도를 한 번 바치더라도 온 마음으로 바치는 것이 더 가치롭지. ‘예식’을 하려고 하지말고 ‘진심’을 담으려고 해봐. 단순히 가난한 이에게 돈을 준다고 ‘선행’이 되는 게 아냐. 그들을 ‘사랑’하기 시작할 때에 선행이 되는거야.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에도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어. 그들을 도우면서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는 자들이 있지. 보란듯이 돈을 주면서 주변의 시선을 만끽하는 자들이야. 이런 이들에게는 상급이 없어. 왜냐면 받을 상을 다 받은 셈이니까. 가난한 이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때에 그들을 올바르게 도와줄 수 있고 그들도 너희들도 잘 되는 길을 찾게 되는거야. 이처럼 모든 일에는 너희들 안에 심어놓은 자유의지가 어느 방향으로 작용하는 지를 잘 살펴보면 답이 나오게 되어 있어.

제가 질문을 잘못 드린 건가요? 아니면 제가 이해를 못하는 건가요? ‘자격 요건’은 그럼 ‘자유의지의 올바른 사용’이라고 정돈하면 되는 건가요?

- 뭐야? 무슨 입학 요강 같은 걸 알기를 바란거야? 세례, 첫영성체, 견진, 혼배성사를 다하고 주일 미사에 빠지지 않고 빠지면 성사 보면 되는 것 정도로 생각한거야? 이봐, 왜이래 아마추어같이? 그게 아니라는 건 잘 알잖아? 하긴 그렇게 가르쳐줘도 이해를 하지 못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더구만. 제말 사랑하라고 내가 바라는 건 제사가 아니라 자비라고 해도 왜 그렇게들 제사를 좋아하는지.

네, 알겠습니다. 한 마디로 무슨 ‘자격 요건’ 같은 건 없다는 거로군요. 모든 순간에 하느님 당신을 찾으라는 말씀이시네요.

- 그래, 모든 순간에 나를 찾아야 해. 왜냐하면 모든 것을 내가 만들었고 나를 통해서 모든 것을 만날 때에 비로소 그 모든 것들은 본질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는 거니까 말야.

사탄은 누구인가요?

- 음, 그 녀석에 대해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전작업이 필요하고 이는 단순히 글로 서술될 수 있는 게 아니야. 마치 색깔을 글로 적어내려는 시도와 비슷하지. 빨강, 파랑, 이런 식으로 적어볼 수는 있겠지만 색깔의 실체는 글로 드러나지 않아. 그것을 직접 눈으로 볼 때에 이루어지는 거지. 사탄에 대해서는 글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야. 하지만 그것을 느끼게 될 때 이해하게 되지. 지금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녀석이 분명히 존재하고 너희들 주변을 돌아다니며 너희들을 노린다는 거야.

그렇군요. 딱히 대책이 있나요?

- 있지. 낚시를 생각해봐. 미끼를 던지면 고기들이 다가와. 사탄이라는 녀석도 이런 방식을 써. ‘유혹’이라는 미끼를 던지지. 그걸 향해 다가오는 녀석들이 있고, 그걸 무는 녀석들이 있고, 반대로 거기에 무심한 녀석들이 있어. 사탄이 건네는 미끼는 모두 ‘세상의 것들’이야. 세상의 재력, 권력, 명예와 같은 것들이지. 때로는 영적인 포장지로 싸서 주기도 해. 마치 성당에 열심히 봉사하는 것이 천상의 사정에 봉사하는 것으로 포장하지만 실제로는 그 안에도 서로간의 경쟁심리, 명예욕, 주임 신부를 통한 권력에의 사랑 같은 것들이 들어 있을 때도 있지. 결국 그렇게 사탄이 던지는 미끼를 무는거야. 대책은 다름이 아니라, 미끼, 즉 유혹을 덮석 물지도, 거기에 다가가지도 않는거야.

감사합니다 주님.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요. 근무를 나가봐야 되서요.

- 좋아. 또 찾아오라구. 언제나 기쁘게 살아가도록 노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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