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성인은 남미에서 유명한 성인입니다. 한국이라면 스페인의 유명한 산티아고 순례길은 들어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산티아고 성인은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대(大) 야고보’ 성인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산티아고 성인, 야고보 성인을 찾는 이유는 다양할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는 그저 그분의 유명세 때문에만 찾을 뿐 그분이 지니신 진정한 내적 가치에 대해서는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복음서 안에는 야고보 성인의 일화가 등장합니다. 바로 제베대오의 두 아들들과 어머니가 등장하는 장면이지요. 어머니는 자녀들의 ‘안녕’을 주님께 기원합니다. 사실 단순한 안녕의 수준이 아니라 보다 높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선처해 주기를 바라셨지요. 어쩌면 대부분의 어머니의 마음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분명하게 일깨워 주십니다. “너희들은 청하는 게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고 말이지요. 그렇지만 그들의 의향을 물어 보십니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겠느냐?”고 말이지요. 그들은 별다른 생각 없이 그렇다고, 할 수 있노라고 대답을 합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수많은 수도 서원식과 부제 서품식과 사제 서품식이 머리에 떠오릅니다. 수도자와 성직자들을 지망하는 사람들은 사실 자신들이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들이 마시게 될 잔이 무엇인지 ‘거의’ 알지 못하고 청합니다. 그저 그 자리의 화려함, 멋짐, 아름다움만을 상상하기 바쁘지요. 그래서 그 모든 과정에 큰 고민 없이 ‘그렇다’라고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당신이 가시는 길에 대해서 수차 설명을 했습니다.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길을 말이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대답을 듣고 나서 다시금 설명을 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미흡하지만 그들의 의지를 존중하신 것이고 받아들이신 뒤에 다시 이끌어 주시기까지 하시는 것이지요.
섬김을 받으려는 이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산티아고 성인의 의지를 받아들인 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세상의 모든 수도 서원식과 부제, 사제 서품식에서 다시금 선포되고 있습니다. 섬김을 받으려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주님의 뜻이었습니다.
많은 이를 살리기 위해서는 한 사람이 희생해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강당을 치우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세속적으로 물들어가는 세상에 빛을 주기 위해서는 수도자의 기도와 희생이 필요합니다. 많은 신자들이 영적 양식을 바라는 성당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한 사제의 거룩한 희생이 필요합니다.
참으로 단순한 논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거듭되이 선포되고 있는 이 주님의 말씀을 우리는 과연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사람들이 산티아고 성인, 야고보 성인을 찾는 이유는 다양할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는 그저 그분의 유명세 때문에만 찾을 뿐 그분이 지니신 진정한 내적 가치에 대해서는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복음서 안에는 야고보 성인의 일화가 등장합니다. 바로 제베대오의 두 아들들과 어머니가 등장하는 장면이지요. 어머니는 자녀들의 ‘안녕’을 주님께 기원합니다. 사실 단순한 안녕의 수준이 아니라 보다 높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선처해 주기를 바라셨지요. 어쩌면 대부분의 어머니의 마음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분명하게 일깨워 주십니다. “너희들은 청하는 게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고 말이지요. 그렇지만 그들의 의향을 물어 보십니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겠느냐?”고 말이지요. 그들은 별다른 생각 없이 그렇다고, 할 수 있노라고 대답을 합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수많은 수도 서원식과 부제 서품식과 사제 서품식이 머리에 떠오릅니다. 수도자와 성직자들을 지망하는 사람들은 사실 자신들이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들이 마시게 될 잔이 무엇인지 ‘거의’ 알지 못하고 청합니다. 그저 그 자리의 화려함, 멋짐, 아름다움만을 상상하기 바쁘지요. 그래서 그 모든 과정에 큰 고민 없이 ‘그렇다’라고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당신이 가시는 길에 대해서 수차 설명을 했습니다.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길을 말이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대답을 듣고 나서 다시금 설명을 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미흡하지만 그들의 의지를 존중하신 것이고 받아들이신 뒤에 다시 이끌어 주시기까지 하시는 것이지요.
섬김을 받으려는 이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산티아고 성인의 의지를 받아들인 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세상의 모든 수도 서원식과 부제, 사제 서품식에서 다시금 선포되고 있습니다. 섬김을 받으려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주님의 뜻이었습니다.
많은 이를 살리기 위해서는 한 사람이 희생해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강당을 치우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세속적으로 물들어가는 세상에 빛을 주기 위해서는 수도자의 기도와 희생이 필요합니다. 많은 신자들이 영적 양식을 바라는 성당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한 사제의 거룩한 희생이 필요합니다.
참으로 단순한 논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거듭되이 선포되고 있는 이 주님의 말씀을 우리는 과연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