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어 성경 창세기를 읽으면서 11장을 마치는데,
이런 설명이 나왔다.
창조주 하느님의 세가지 말씀들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하느님은 말씀으로 '창조'하셨고,
하느님은 말씀으로 '축복'하셨으며,
하느님은 말씀으로 '선택'하시고 '사명'을 주셨다는 이야기이다.
말인즉슨 하느님은 '창조'를 통해 자동으로 굴러가는 시스템을 마련 하셨지만,
그냥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니라,
'축복'을 통해 인간사에 개입하시고,
나아가 한 백성을 '선택'하고 '사명'을 주신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지금 이 성경을 읽고 있는 독자,
그리고 나아가 우리 교회는 [선택]된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냥 평범하게 살 수 있었을텐데 왜 선택을 당했을까?
그냥 남들 사는 것 처럼 살면 되지 않는가 하는,
일반적인 신자라면 누구나 가져보는 같은 의문을 제시하고 있었다.
마치 그 노래와 같다.
'당신을 몰랐더라면, 더욱 편했을지도 모르는 그런 세상 이지만,
당신을 알게 된 후로 얻어진 자유, 평화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네.'
선택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왜 우리는 하느님에게 '선택' 당했을까?
이건 받아들이는 사람 나름인 것 같다.
누군가는 이 선택을 '쓸데없는 것', '귀찮은 것'으로 치부해버리고 만다.
성경의 초대받은 이들이 자신의 소와 결혼과 장례를 더 귀한 것으로 생각해 버린 것처럼...
'선택'은 그런 부정적인 게 아니다.
우리가 도구를 선택할 때에는 목적을 가지고 하는 것처럼,
선택은 늘 '사명'을 동반한다.
뭔가 가야할 길을 누가 알려주지 않을 때에는 우리가 길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눈 먼 장님이 운동장 한 구석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촛불을 찾기 위해서는
모든 운동장을 샅샅이 뒤져야 하는 것처럼,
운 좋으면 얻어걸릴 것이고, 운 나쁘면 평생을 찾다가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나마 운 좋게 찾았던 게, 다른 이가 이미 알려줬던 것이라면 얼마나 화가 날려나 ㅎㅎㅎ
하느님은 이미 알려주셨다.
'사랑'이라고.
오늘 아침 형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인간은 '생각의 신'이라고,
그래서 내가 덧붙였다.
'하지만 사랑의 죄인'이라고.
우리는 생각으로는 우주정복도 가능하다.
하지만 사랑하는 데에는 어린 아이와 같다.
사랑할 줄을 모른다...
오늘 주어진 하루도,
이 사랑 연습하는데에 써야겠다.
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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